▲ 최정우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사업국장

교육이라는 이름의 기만과 폭력, 간접고용 현장실습 실태보고.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2005년 발표한 보고서 제목이다. 청소년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10~12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렸다. 중소·영세 업체가 대부분인지라 작업환경은 열악했다. 산업재해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 후 10년여가 지났다. 문제는 외려 악화됐다.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졌다. 자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해법을 찾는 이들의 기고를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1990년대 말쯤으로 기억된다. 내가 분회장으로 있던 공장에 서울의 한 공고 실습생 7명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당시 30대를 바라보는 젊은 나이였기에 이 친구들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들었다. 실습생이라고는 하지만 그 당시는 오자마자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것에 아무런 고민이 없었다. 당연한 것인 양 첫날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일주일 정도 지나면 사출성형기까지 잡아 가며 일하는 그야말로 똑같은 노동자였다.

당시 우리 공장은 금속노조 지역지회에 속한 분회였다. 이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나중에는 5명을 노동조합에 가입시키기도 했다. 총무부장은 학생이라서 가입대상이 아니지 않냐고 했지만 지역지회이기 때문에 가능했고 조합원들의 관심과 의지가 있어 큰 문제는 없었다. 조합원 사이에서도 아들뻘 되는 학생노동자(?)들은 인기였고 고단한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후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대학진학이나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섰다. 엄마 같은 조합원들은 꼭 열심히 공부해서 기술을 배우거나 대학에 들어가라며 정들었던 이 친구들이 떠날 때 눈물을 보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16년 정도 지난 듯하다. 얼마 전 부산 녹산공단 조직화사업 수련회에 가서 부산 말레베어공조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조합원들이 파업을 할 당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이 조합원들이 일하던 라인에 대체인력으로 들어와 일한 사건을 좀 더 자세히 듣게 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습생들은 파업 현장의 용역이 무서워 종종 퇴근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 출근길이 무서웠다고 했다. 그리고 잔업과 특근은 여전했다.

현장실습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현장실습생들은 청소년이자 실습생이라는 불리한 지위 때문에 사고위험에 노출되고,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실습을 나갔던 학생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치는 일이 매년 일어나고 있다. 이런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정부가 미봉책을 내놓았지만 비극은 되풀이되고 있다.

현장실습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런 물음이 나온 것은 한 해 두 해가 아니다. 현장실습이 현장의 최신 설비와 공정을 배우고 익히는 살아 있는 교육이 아니라, 학교 대신 사업장으로 출석하는 저임금·단순노동 수급장치로 변질된 것 또한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취업률 높이기에 급급한 정부 정책은 현장실습생들의 현실이 아니라 기업의 시각과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 교육과정과 산학일체형 도제교육, 산학관 네트워크 강화라는 화려한 말 뒤에 취업률을 볼모로 열악한 조건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견뎌 내야 하는 생애 첫 노동을 접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2004년 전교조 실업위원회가 전문계(실업계)와 일반계 학생 3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학생들은 노동자를 꼭 필요한 존재(35.2%)나 불쌍하고(33.6%), 가난하고(34.6%),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존재(55.3%)로 생각했다. 40% 가까운 학생은 장차 노동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노동자로 불릴 것에 대해 적잖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 일간지 기사에 따르면 서울의 초등학생 110명에게 노동이라는 말을 듣고 떠오른 단어를 물었더니 1위는 힘듦·힘든 일(48.1%)이 차지했다. 노예·천민을 떠올린 학생도 7명(6.3%)이나 됐다고 한다.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생각이 이러할진대 노동조합에 대한 생각은 어떨지 불 보듯 뻔하다.

노동인권교육은 근로교육이 아니다

지난달 29일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교육부는 “근로권익과 직업윤리에 대한 교육을 확대하고 교육방식을 질적으로 제고하겠다”고 발표했다(제2차 청소년종합보호대책). 발표만 보면 제법 고무적인 상황이 된 듯하다. 2014년부터 민주노총은 청년·청소년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노동인권 교육이 지난 10여년 동안 관련 단체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지역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지금 민주노총 16개 지역본부 대부분은 지역 청소년노동인권 단체들과 함께 청소년들에게 노동의 가치, 노동자 인권을 가르치는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청년들이 소중한 노동, 차별 없는 노동, 인간다운 노동, 안전한 노동, 건강한 노동, 즐거운 노동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힘과 법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권리라도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줘야 한다. 그러려면 직업윤리만 강조하는 교육이 아닌 노동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 교육이 돼야 한다. 노동현장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은 물론 노동조합에 대한 활동·기능 소개와 더불어 단체교섭이나 스스로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온전한 교육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의 교육과 상담을 보장해야 한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노동인권 강사단으로 활동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민주노총의 청년·청소년 노동자 만나기

2014년부터 민주노총은 청년을 조직화 사업의 중점 대상으로 선정했다. 기존 노동운동이 포괄하지 못한 영역, 청년조직화를 추진하고 있는 단위들과 연계해 조직화에 집중하자는 결의를 했다. 청년사업 영역으로 청소년노동인권 사업을 계획했고 더딘 걸음이지만 미래 노동현장의 주역이 될 노동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나의 낯선 동료’ 또는 ‘금속노동자와 청소년노동자’라는 교육동영상을 제작해 조합원 교육을 하고 있다. 지역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와 지역본부는 학교 안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넘어 학교 밖 청소년노동에 대한 실태와 권리찾기 사업을 진행 중이다.

노동개악을 볼모로 청년일자리를 파는 정부에 맞선 청년들의 움직임에도 민주노총은 함께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이 청년조합원들의 조직체계를 구성하는 일이다. 청년조직 건설과 청년에 대한 민주노총의 개념·대상·관점을 두고 다양한 의견과 시각이 있지만 청년들 스스로가 주체가 돼 당사자 운동으로 청년세대의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민주노총에 흐르게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청소년노동인권 사업에 대해서도 민주노총 청년조직과의 결합을 통해 청소년 당사자의 소중한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노총(DGB)의 청년위원회는 실습생·노동자·학생, 군복무 및 대체복무자, 실업자를 대상으로 하고 30세 미만 청소년·청년을 대표한다. 다양한 활동 중에도 직업학교를 찾아가 모든 실습생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임금노동자가 1천900만명인데도 "노동이 부끄러워요" 혹은 "내 꿈은 노동자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우리의 미래 동료인 청소년들. 이들의 삶터 가까이 찾아가 말 걸고, 만나고, 함께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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