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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불임금, 이자는 못 붙여 줄망정 깎으면 안 돼최진수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법규부장
최진수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법규부장

공인노무사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맡았던 사건은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시간외근로수당 체불 진정이었다. 당시 경비노동자는 아파트 관리 용역업체 소속으로 있었는데, 진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용역업체 소속 관리소장이 체불임금 청산의 어려움을 호소했고, 결국 당사자들의 허락을 받아 체불임금 전액의 50% 정도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금액이 실제 집행되고 나자 경비노동자분들이 수고했다며 치켜세워 줬지만 나는 그때 분명 상당한 자괴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체불임금 진정사건 합의 과정을 겪을 때면 남모를 떨림이 있다.

임금 청산의무를 정한 근로기준법은 헌법에서 선언한 것과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는 장치를 정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체불임금은 일반 민사관계 채권 성격과는 확연히 다르다.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에 ‘흥정’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 체불임금 합의 과정에서 내가 느낀 자괴감의 정체는 바로 ‘흥정해서는 안 될 것에 대해 개입했다’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여기에 좀 더 짚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 체불임금 합의 과정에서 진정사건을 담당하는 근로감독관의 개입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근로감독관이 합의에 개입하는 경우는 크게 보면 체불액수가 상당히 크거나, 체불사업주의 경영사정이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우인데(결국 체불사업주의 청산능력이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근로감독관이 사건의 신속한 해결만을 염두에 둔 나머지 원래 체불임금 액수보다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합의 수준을 잡고 이를 중재하려 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최근 다른 노무사도 근로감독관이 체불임금의 50% 수준을 제시하면서 합의를 종용한 적이 있다고 귀띔한다.

이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고용노동백서에 따르면 체불임금 청산율(체불임금 청산액÷체불 확인액)은 2004년 69.3%였다가, 2014년 48.9%에 그쳐 있다. 여기에 다른 통계를 더해 보면 상황은 좀 더 명확해진다. 2014년 임금체불 신고사건 지도해결율(지도해결 건수÷전체 임금체불 신고 사건수)은 68.9%고 그해 나머지 체불 사건은 모두 사법처리됐다. 체불임금 청산율이 70%에 육박하는데도 노동청 신고를 통해 해결된 체불금액은 5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해결률은 분명 약 70%인데 왜 청산액은 70%가 아니라 50%도 안 되는 수준인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혹시 사법처리된 체불금액이 지도해결된 70%의 액수에 육박했던 것일까. 그러기는 쉽지 않다. 이는 근로감독관이 체불임금을 지도해결하는 과정에서 ‘흥정’이 일어났음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체불임금 청산 과정에서 흥정은 사건의 신속한 해결을 위한 필요악인가. 여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논리가 있다. "체불임금을 모두 청산한다면 사업 경영이 위태로워지거나 도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그것은 "기업은 노동자의 체불임금을 경영 자산으로 삼을 수 있는가" 또는 "우리 노동법제가 진정 그것을 허락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현재 임금체불에 대해서는 형사처벌과 지연이자제도, 체불사업주 명단 공개 및 신용제재, 체당금제도, 체불청산지원 사업주 융자제도 등 체불방지와 지도해결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두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제도가 있다. 그것은 ‘체불청산 지원 사업주 융자제도’와 ‘체당금제도’다. 두 가지 제도가 양립하고 있다는 것은 곧 "국가에서라도 돈을 융자해 줄 테니 체불임금은 해결하라"는 것과 "그것도 어렵다고 한다면 차라리 경영을 멈추라, 국가가 해결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체불임금 청산 관련 제도가 기본적으로 "노동자 임금을 희생해 연명하는 기업은 더 이상 존재 의의가 없다"는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근로감독관은 다시 돌아봐야 한다. 체불임금의 50%라니. 근기법에서도 임금의 70%까지는 양보가 없다. 물론 근로감독관이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지도해결을 하려는 것은 분명 진정 과정에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이후 절차에서 당사자가 짊어질 시간적·비용적 부담에 대한 우려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체불임금은 저녁시장에 나오는 떨이 상품이 아니다.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보상이다. 이자는 못 붙여 줄망정 반값은 너무하지 않은가.

최진수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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