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준상 전 KBS 이사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을 통해 알파고로 상징되는 인공지능의 위협은 매우 빨리 대중적으로 퍼졌다. 여전히 "~카더라"는 방관 섞인 우려가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애플을 비롯한 초국적기업들이 중국에서 박차를 가하고 있는 공장 자동화는 삼성전자 등에 대한 경쟁 압력을 매개로 해서 이런 한가한 우려를 매우 빠른 시일 안에 압도할 것이다. 이와 함께 1970년대 이탈리아 자동차회사 피아트가 구상하다 막대한 비용 문제로 포기했던 ‘무인 자동차 공장’의 꿈은 인공지능(과 그 물적 구현체인 로봇) 기술의 발전과 함께 현실화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물론 기계·자동화 등과 관련한 논쟁은 역사적으로 끊이지 않았다. 기술결정론에 대한 비판과 ‘기술의 사회적 결정’이라는 테제는 그런 논쟁의 결과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사회적 결정은 결국 힘의 관계가 좌우한다고 할 때 노동의 힘이 점점 취약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현재로선 기술결정론적인 현실로 귀착이 될 위험성이 대단히 높다.

국내외 안팎에서 나오는 대책과 제안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보편적 기본소득(BI)이다. 높은 실업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좌파 쪽에서 제안했던 이 대책은 직업의 있고 없음에 관계없이 인간으로서 생활하기 위한 최소한의 소득을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게 핵심이다. 이런 발상은 이제 이념적 스펙트럼에 관계없이 진지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이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니 하니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보편적 기본소득의 청년판이라고 할 수 있는 ‘청년 배당’ 제도를 성남시에서 도입한 건 돌출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의 포퓰리즘 행태가 결코 아니다.

청년판이 아닌 보편적 적용판을 도입하기 위해선 사회보험 간의 조정과 정비 등 엄중한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보편적 기본소득 제도 도입은 부인할 수 없는 대안의 핵심 축으로 꼽을 만하다. 하지만 이것은 현상을 받아들이는 사후(ex post facto) 안전판에 해당한다. 관심은 사전 안전판은 없을까 하는 쪽으로 흐른다. 널리 입에 오르내리는 공유경제(shared economy)를 생각해 보자. 공유경제의 핵심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의 일부를 공동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내놓는(그렇지 않았으면 놀고 있었을 것이다)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매개가 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내놓은 자산이 적절한 소비자와 연결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이런 연결이 이뤄지는 플랫폼 구축을 가능하게 했다는 얘기다.

우버나 에어비앤비가 세금을 내느니 안 내느니, 진짜 공유경제니 아니니 하는 것을 따지려는 건 아니다. 제도 공백을 이용한 탈세는 명백한 잘못이며, 불공정한 경쟁을 통해 등록과 허가를 받는 기존 택시나 숙박업 등의 일자리를 뺏는 것에 해당한다. 제도 공백을 틈타 규모가 큰 오피스텔 소유자들이 기존 호텔업계에 대한 경쟁자로 나서고 있는 현실은, 수익 극대화를 위한 또 다른 ‘OtoO(online to offline) 서비스’에 불과하다는 비판까지 나오게 한다. 자동차를 렌트해 우버에 가입하는 행태도 이와 마찬가지 비판을 불러온다.

공유경제의 애초 문제의식을 살린다면, 누가 어떻게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현직이든 퇴직이든 자동차나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노동자가 자동차의 노는 시간이나 일정한 기간 동안 노는 방을 내놓는다면, 그리고 이것을 노동계가 주도하는 협동조합 모델로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점이다. 부업으로 시작한 사업이 어느새 본업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청년실업으로 고통받는 자식이 이 본업을 이어받을 수도 있다. 적극적인 형태로는, 노동자 소유의 집이 아니라 노동계가 조합비의 일부를 이용해 오피스텔을 공유경제로 조직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유경제 활성화의 6가지 조건 중 하나로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이 제시한 “공유하려는 주된 자산은 본인의 소유여야 한다”는 조건은 제한적이다. 이렇게 조직화한 ‘소셜 에어비앤비’의 경우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호텔을 비롯해 기존 숙박업계에 몰아닥칠 인공지능의 자동화 위협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이점이 있을 것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대체 위협은 다각적이다. 기존 노동자에 대해선 인원 축소와 임금 삭감 압력으로 다가올 건 너무 분명하다. 여기에 저항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만으론 노동의 고립화는 점점 심해질 것이고, 그 저항의 산출물도 노동계 자체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다. 청년실업의 문제까지 아울러 좀 더 넓고 크고 깊게 생각하는 시간과 공간이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필요할 것 같다.

전 KBS 이사 (cjsang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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