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의 칼럼니스트 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팝아트 작가가 있다. 지금도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때 어디 가나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2000년부터겠다. 루이비통의 아트 디렉터 마크 제이컵스의 의뢰로 무라카미가 루이비통 모노그램 가방에 그림을 그려 넣기 시작한 때부터였으니까.

나는 패션잡지 에디터 생활을 오래했지만 루이비통을 싫어했고, 루이비통 가방에 그려진 무라카미 그림은 더더욱 싫어했다. 그냥 내 정서에 맞지 않았고 내 취향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작가를 존중했다. 존중을 넘어 존경스러운 작가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는 “사업을 잘하는 것은 가장 매력적인 예술이다”고 했던 앤디 워홀의 추종자답게 사업을 잘했다. 철저하게 상업적인 문화산업과 관계를 잘 맺으면서도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워홀의 ‘공장’ 못지않은 규모의 대형 스튜디오를 몇 개씩 운영하며 자신은 개념만 잡아 지시를 내리고 그림은 스태프라고 부르는 조수들이 그렸다. 하지만 그 사실을 결코 숨기지 않았다. 숨기기는커녕 공동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작품에 일일이 다 명기할 정도였다. 어떤 작품에는 25명의 스태프 이름이, 또 어떤 작품 뒤에는 무려 35명의 조수 이름이 적혀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부상해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로 통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이라는 작가의 경우는 더 재밌다. 그에겐 스튜디오가 없다. 어시스턴트도 없다. 그렇다고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작품을 생산해 내는 건 아니다. 그는 주로 전문가들에게 ‘오더’를 주고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아 돈을 지불하고 작품을 가져다 전시회를 연다. 심지어 전시할 작품이 없을 때에는 남의 갤러리에서 훔치기도 하고, 베니스 비엔날레가 할당한 전시 공간을 이탈리아 향수 회사의 광고 에이전트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 작품이 없어도 그러한 퍼포먼스 자체가 누구도 감히 생각해 본 적 없고 흉내 낼 수도 없었던 그만의 작품이었던 거다. 작품 제목이 시사하듯 ‘빌어먹을 레디 메이드’다운 작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사기죄’로 고소당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도난죄’가 적용돼 감옥행을 간신히 면한 적은 있지만 ‘사기’를 친 적은 없다. 심지어 난 마우리치오 카텔란이라는 작가를 사랑한다. 현대미술이라는 것이 결국은 뒤샹과 워홀의 영향력 아래 나오는 고만고만한 것이라면 카텔란은 뒤샹과 워홀을 뛰어넘는 최초의 예술가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관행이나 관습·규제·규정, 혹은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는, 그것도 넌지시 던지지 않고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충격적인 방법으로 던지는 ‘진짜 아티스트’기 때문이다. 진정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했을 거다. 정치·사회·교육·종교·미술계의 ‘부패’를 겨냥한 폭탄 같은 작품을 보여 주고, 그 작품으로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부패’를 자각하지 못하는 ‘눈먼’ 현대인들의 눈과 심장에 충격을 주고도 그토록 태연하려면.

그 비교 대상의 수준이 좀 저열해 민망하지만 ‘어버이연합’ 뉴스를 집어삼킨 이슈다 보니 ‘대작’ 시비에 휘말린 조영남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학 전문’을 자칭하는 평론가 진중권은 ‘조영남은 사기꾼인가?’라는 칼럼에서 "대작은 예술계의 관행"이라며 조영남을 두둔하고 되레 ‘현대예술’에 ‘무지’한 대중을 조롱했다. 결코 ‘현대예술’에 무지하지 않은 나조차 분노심에 몸을 떨었다. 틀렸다. 내가 아는 돈벌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관행’에 역행하는 게 예술이다. 그런 점에서 조영남의 화투 그림은 예술이 아니다. 관행에 따른 손쉬운 돈벌이 수단이지. 심지어 그는 양심 없는 사업가였다. 작품당 겨우 10만원을 주며 화가의 노동력을 착취했으니 말이다.

조영남의 변명과 그를 두둔하는 진중권의 글을 읽고 있으면 누군가의 지적처럼 ‘미술계는 사기가 관행’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 점에서 ‘사기죄’가 아니라 두 사람 모두에게 ‘예술 모독죄’를 적용시켜 그 죄를 묻고 싶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화가들에게는 조수가 없다. 지금도 고통스럽게, 고독하게 그림과 대결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막노동이나 시간강사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최저생계비를 버는 화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진중권은 모르는 모양이다.

칼럼니스트 겸 작가 (@kimkyung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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