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바다 위 공장’이라 불렸다. 푸른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몰려나오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긴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약 4천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어요. 점심시간엔 늘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죠.”

지난달 해양플랜트 작업현장을 안내한 대우조선해양노조 간부의 얘기다. 해양플랜트는 석유·천연가스 등 해양자원을 시추하고, 정제하는 시설을 갖춘 배다.

“해양플랜트를 보면 피가 마릅니다. 7월 말까지 선주에게 무사히 넘겨주지 못하면 회사 손해가 막심하거든요. 배를 잘 넘겨줘도 걱정이에요. 이렇게 많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갈 곳이 없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조선 3사는 올해 말까지 해양플랜트 14기를 선주에게 인도할 예정이다. 여기서 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가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 된다. 지난해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 손실액이 8조원에 달하는데, 7조원이 해양부문에서 발생한 탓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조선·해양 인력은 약 19만5천명이다. 이 가운데 사내하청 인력만 13만명이다. 고유가 바람을 타고 해양플랜트 수주가 몰리면서 2010년부터 늘어난 해양부문 사내하청 인력은 3만5천여명이다. 해양플랜트 작업에 투입되는 인력의 90%가 사내하청 노동자다. 절반 이상이 ‘물량팀’으로 불리는 일용직들이다. 이들이 감원 타깃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량해고 사태가 예고됐는데도 정부는 구조조정을 이끌고 있는 임종룡 금융위원장 얼굴만 쳐다본다. 5대 수출 효자업종인 조선업이 기로에 섰음에도 정부 안에 컨트롤타워조차 없다. 그러다 보니 산업정책과 인력재배치 계획은 찾아보기 힘들다. 위기에 몰린 조선업을 어떻게 살릴지는 뒷전이라는 얘기다. 그저 조선업 부실처리에만 골몰하는 실정이다.

고용위기를 예방하는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구조조정 전담부처 눈치만 보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해 말 박근혜 대통령에게 ‘고용위기 지원대책’을 보고했다. 대량 고용변동에 대응한 선제적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지만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 구조조정이 예고됐음에도 선제적 대응은 없다.

이러니 조선업종과 지방자치단체가 아우성이다. 해양플랜트협회는 이미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을 요청했다. 조선 3사가 위치한 거제·창원시는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일단 노동부는 다음달 고용정책심의회를 열어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휴업·휴직 등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주에겐 고용유지원금이, 실직 노동자에겐 실업급여 지급이 연장되고 전직훈련 수당이 지급된다. 재원은 고용보험기금으로 충당한다.

특별고용지원업종 제도는 낯설지 않다. 과거 대량해고가 발생한 평택·통영시가 고용촉진개발지역으로 지정된 적이 있다. 정부 대응은 뒷북이다. 고용위기 징후가 나타나기 전이 아니라 악화된 뒤에 지정하는 바람에 대량해고를 막지 못했다. 고용유지지원금은 사업주 비용부담만 경감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신규 일자리와 전직 효과가 미미해 사후약방문에 그쳤다.

통영시의 경우 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렸지만 이들은 정부 고용지원 대상에서 배제됐다. 대부분 고용보험 같은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직에 성공한 것은 당시 고유가 바람을 타고 확대된 조선 3사의 해양플랜트 수주 덕이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조선 3사 해양플랜트 사업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또다시 해고에 직면했다.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물량팀 노동자가 고용지원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반복됐다.

산업정책과 인력재배치 계획이 없는 구조조정은 고용재난만 일으킬 뿐이다. 이웃나라 일본도 불황 시기에 조선업을 감축하는 바람에 우리나라에 세계 1등 자리를 내줬다. 실기해선 안 된다.

고용재난을 겪는 노동자들이 새 직장을 찾을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고용보험 가입 여부가 정부 고용지원의 유일한 전제가 돼선 곤란하다. 이제라도 고용지원 사각지대에 있는 물량팀 하청노동자를 직접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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