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진미 영화평론가

<내일을 위한 시간>은 다르덴 형제 특유의 사실적인 화면과 마리옹 코티야르의 호연이 돋보이는 영화로, 노동자들이 처한 신자유주의적 노동문제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원제는 로 1박2일을 뜻한다. 영화는 해고 위기에 처한 주인공이 1박2일 동안 자신의 복직을 위해 동료들을 설득해 가는 과정을 담는다.

130만원 받고 동료 해고에 찬성하시겠습니까?

영화는 누워 있던 산드라(마리옹 코티야르)가 직장 동료의 전화를 받고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산드라의 직장에서 금요일에 직원투표를 했는데, 16명 중 14명이 산드라의 해고에 동의했다고 한다. 산드라는 지금 병가로 휴직 중이다. 이제 직장에 복귀하려는데 사장이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받을래, 아니면 산드라를 복직시킬까를 놓고 표결에 부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투표 직전에 반장이 3명의 직원을 개별 접촉해 “해고가 사장의 뜻”이라느니, “산드라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해고될 것”이라는 말로 투표에 영향을 줬다는 제보가 있다. 정의롭고 오지랖 넓은 줄리엣은 투표가 무효라고 선언하며, 산드라를 급히 불러내 함께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월요일 아침에 재투표를 실시하게 해 달라는 허락을 받아 낸다.

상황이 참 묘하다. 산드라가 병가로 쉬는 사이, 회사는 16명으로도 일이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사장은 “태양광 패널 제조업 시장이 좋지 않다”는 경영상 이유를 댄다. 어쨌든 경영상 위기에서 인건비 감축을 가장 손쉬운 해결책으로 생각했을 테고, 자기 손에 직접 피를 묻히기 싫으니까, 보너스를 미끼로 노동자들이 동료의 해고를 결정하게 한 것이다. 보너스는 1천유로로 약 130만원이다. 부자에겐 그깟 130만원, 하루저녁 식사비에 불과하지만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130만원은 절실한 돈이다. 1년치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라 말하는 이도 있고, 집수리 대금을 치러야 한다는 이도 있다. 누구나 돈이 필요하다.

산드라도 사정이 딱하긴 마찬가지다. 산드라는 월급이 없으면 융자를 갚을 수 없어 다시 임대아파트로 돌아가야 한다. 남편이 피자가게에서 일하지만 두 아이를 키우는 데 생활비는 늘 부족하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산드라는 주말 동안 직장 동료들의 집을 방문해 월요일 재투표에서 내 복직에 표를 달라고 설득하려 한다. 그런데 설득이라는 게 참 얄궂다. 보너스를 택한 사람들에게, 그걸 포기하고 내 복직에 표를 달라는 게 꼭 구걸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130만원을 빼앗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산드라의 방문을 받는 사람들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매정한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불편하고, 이기심을 시험당하는 것 같아 괴롭다. 심지어 가족 간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산드라는 친했던 동료가 자신을 피하는 것에 상처받기도 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듯한 눈빛에 자존감이 상한다.

하필이면 우울증,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더 상황이 나쁜 것은 산드라의 병이 우울증이라는 사실이다. 심한 우울증으로 병가를 냈고 치료를 통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감정기복이 심해서 여차하면 눈물을 쏟는다. 보통사람도 견디기 힘든 '불편한 방문'을 하느라, 산드라는 연거푸 신경안정제를 먹는다. 산드라가 안정된 상태로 복직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약간의 우울증은 별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회사는 산드라의 이런 사정을 해고 빌미로 삼는다. 반장은 “산드라가 아팠기 때문에 예전보다 일을 잘 못할 것”이란 말을 동료들에게 퍼뜨리며, 주말 사이 전화를 돌려 표 단속을 한다.

영화는 가뜩이나 우울증으로 자존감이 낮아져 있는 산드라가 1박2일 동안 직장 동료들의 집을 방문하며 자신을 위해 투표해 달라고 부탁하며 겪는 심리적 공황을 잘 보여 준다. 또한 산드라의 방문을 받은 동료들의 다양한 사정과 태도를 보여 준다. 보너스를 택한 뒤 마음 아팠다며 눈물짓는 사람도 있지만, 네 해고가 내 탓은 아니니 나를 원망하지 말라고 선을 긋는 이도 있다. 산드라나 동료들이나 이 상황이 자신들의 탓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보너스냐 동료냐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사장의 비열함을 머리로는 인식하지만, 도덕적 딜레마를 겪으면서 노동자들 사이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산드라는 자신이 복직된다 해도, 동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모르겠다는 자괴감에 빠져, 급기야 신경안정제 한 통을 삼켜 버린다.

자본의 이간질 속에서 윤리적 선택을 한다는 것은

영화는 간명한 상황을 통해 자본의 비열함과 노동자들의 분열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자본은 자신들의 위기로 인한 노사갈등을 노동자들 사이의 개인적 관계로 바꿔 놓는다. 영화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동료애와 자존감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한 여성은 보너스를 포기하는 문제로 남편과 다투고 집을 나온다. 그는 처음으로 남편의 의지에 맞서 자신의 결정을 밀어붙였다며 홀가분한 표정을 짓는다. 산드라의 문제가 그에게는 여성으로서의 억압을 깨닫게 한 단초가 된 셈이다. 산드라가 마지막으로 찾은 흑인 동료는 자신이 산드라의 해고에 동의한 것은 보너스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계약직으로 반장의 뜻과 달리 투표했다가 불이익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고 털어놓는다. 재계약이 되지 못할까 봐 두렵지만, 그는 산드라를 위해 투표하겠노라 말한다.

월요일 아침, 치러진 투표는 8대 8로 부결된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며 돌아서려는 산드라를 사장이 부른다. 그는 산드라의 능력을 칭찬하면서 ‘팀의 화합을 위해’ 보너스도 주고 복직도 시켜 주겠노라 말한다. 산드라의 눈물겨운 노력이 자본의 자비를 얻어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게 영화의 결론인가. 그렇지 않다. 산드라의 복직은 계약직 동료의 해고와 맞물린 것이다. 사장은 “해고가 아니라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것”이라 강조하지만 흰소리다. 산드라의 해고가 사장의 뜻이었고, 산드라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해고될 거라는 소문, 그리고 흑인 계약직 동료가 품었던 불안은 모두 사실이었다. 여기서 산드라는 무엇을 택할 것인가. 산드라는 사장의 제안을 가볍게 거절하고 돌아선다. 1박2일 동안 동료를 설득하러 다니면서, 노동자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자본의 비열함과 노동자로서의 동료애와 인간의 품위에 대해 온몸으로 느낀 산드라의 결론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한결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남편에게 “우리 잘 싸웠지? 행복해”라고 말한다. 진정한 해피엔딩은 자본의 자비가 아니라, 노동자의 각성이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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