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에너지공기업 기능재편이 뜨거운 감자다. 활시위를 당긴 건 정부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서울 역삼동 해외자원개발협회에서 개최한 '해외자원개발 추진체계 개편방안 연구용역 결과 공청회'에서 산자부 연구용역을 수행한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은 "2014년 이후 석유공사·가스공사·광물공사에서 자산손상·손익악화·부채증가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 뒤 구조개편안을 발표했다.

안진회계법인은 이날 △석유자원 개발기능 민간 이관 △석유 자원개발 전문회사 신설 △석유공사 자원개발 기능 가스공사로 이관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통합안을 제시했다. 재무 회계가 부실하니 남은 우량자산을 떼내 민간에 팔거나 그나마 비슷한 자원개발 성격을 가진 가스공사와 통합해 자생력을 키우라는 얘기다. 그동안 논란의 중심에 섰던 해외자원개발 관련 사업을 이번 기회에 털어 내고 싶다는 정부 속내가 반영된 안이었다.

공청회 후폭풍은 거셌다. 해외자원개발 시장 전망이나 나아갈 길에 대한 대응책이 없는 탓에 해당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학계와 민간기업에서도 십자포화를 맞았다. 노동계 입장도 마찬가지다.

지난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공공노련 사무실에서 만난 김병수(40·사진) 석유공사노조 위원장은 "정부가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방안을 찾다 보니 현실성도 없고 말도 안 되는 방안들을 내놓았다"고 비판했다.

◇"이대로면 2~3년 안에 자생 어려워져"=김 위원장도 석유공사의 위기 상황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2~3년 안에 석유공사가 자생하기 어렵다는 것에 이견이 없다고 했다. 석유공사가 맞닥뜨리고 있는 암울한 현실은 각종 지표가 말해 준다. 지난해 결산기준 부채비율이 453%나 된다. 지난해에만 4조5천억원의 손실이 났다. 차입금이 13조원이다 보니 한 해에 들어가는 금융비용(이자)만 5천억원에 달한다. 석유공사의 이자비용 대비 에비타(EBITDA, 법인세 감가상각비 등 비현금성비용을 포함한 영업이익) 비율은 1.1이다. 이 수치가 1 이하로 떨어지면 이익을 내도 이자를 갚지 못한다는 뜻이다.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황이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

세계적인 저유가 흐름도 악재다. WTI(서부텍사스유) 기준으로 2014년 6월 배럴당 106.83달러였던 유가는 지난해 말 배럴당 37.04달러까지 떨어졌다. 유가가 급락하면서 석유공사의 해외자원개발 관련 자산가치도 크게 하락했다.

김 위원장은 "침체기에 접어든 세계 시장경제나 E&P(Exploration & Production, 자원개발) 시장을 봤을 때 향후 석유공사가 지금의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자본투자와 시설투자가 꾸준히 이뤄져야 하는데 정부 의지가 없어 어렵다고 본다"며 "더 이상 두고 볼 수만 없는 상황까지 온 건 맞지만 지금 나온 개편안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결코 아니다"고 단언했다.

◇MB 정부, 허황된 석유공사 대형화 정책=그는 "석유공사 위기를 초래한 원인부터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시작한 '석유공사 대형화' 전략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6월 석유공사 대형화 방안을 발표하고, 19조원(실제 총액은 18조원)을 투자해 세계 60위 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석유공사의 1일 생산량을 2007년 5만배럴에서 2012년 30만배럴까지 늘리고 자산규모를 9조4천억원에서 30조원으로 늘리겠다는 구상이었다.

2003년 베트남 15-1광구에서 원유 시추에 성공하고, 2004년 동해-1 가스전에서 천연가스 시험생산에 성공한 경험이 전부였던 석유공사를 5년 만에 세계 60위 기업 반열에 올리겠다는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가 택한 전략은 해외 생산광구와 자산을 가진 회사를 매입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정부는 한 번 유전이 터지면 대박을 치지만 오랜 시간과 노력, 고비용 투자가 필요한 탐사광구보다는 매장량이 확인된 생산광구를 확보하는 데 집중 투자했다. 생산광구를 확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생산광구별로 자산을 매입하거나 지분을 투자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자산을 갖고 있는 석유회사를 인수합병(M&A)하는 방식이 있다. 정부는 석유공사 사이즈를 단기간에 키우기 위해 인수합병 방식을 택했고, 그 결과 최악의 부실 인수합병으로 꼽히는 캐나다 하베스트를 비롯해 영국 다나, 미국 이글포드 지분 인수가 줄줄이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생산광구를 매입하거나 인수합병을 해서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산이 갑자기 많아지다 보니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매입하려는 회사가 현재 시장에서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향후 어떤 미래가치를 갖고 있는지, 자산 포트폴리오가 적절한지 꼼꼼히 따지고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인수합병 이후에도 석유공사의 가치를 가지고 기존 기업의 기술인력이나 사업인력을 통제하면서 화학적 통합을 이끌어야 했는데, 그럴 만한 능력이 부족했다. 자산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도 없이 인수합병을 하면서 부실이 쌓였다."

대형화 과정에서 진 어마어마한 차입금은 석유공사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족쇄다. 대형화 비용 18조원 중 정부는 4조1천억원을 투자했고, 나머지 비용은 모두 석유공사가 떠안았다. 신현돈 인하대 교수(에너지자원공학)는 이를 '빵셔틀'에 비유했다. 해외자원개발 추진체계 개편방안 공청회에 패널로 참석한 신 교수는 "그간 정부 정책은 100원짜리 빵을 20원 주고 사 오라는 빵셔틀과 다를 게 없었다"고 비난했다.

◇골치 아프니 손 떼겠다?=대형화 정책은 허황됐고, 전략은 없었으며, 역량은 부족했다. 계속된 원유가격 하락으로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가 망쳐 놓은 석유공사를 '버린 자식'으로 취급하는 듯하다. 공청회에서 발표된 석유자원 개발기능 민간 이관이나 석유자원개발 전문회사 신설, 석유공사 자원개발 기능 가스공사로의 이관 또는 통합방안은 사실상 정부 차원의 자원개발사업 철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민간기업에 석유자원 개발기능을 넘기는 방안에 대해 "E&P 시장 현실을 모르는 졸속적인 안"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투자 회수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 E&P 사업 특성상 민간회사들이 석유개발에 투자하기는 어렵다"며 "해외 메이저 석유회사들의 경우 대부분 20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나라 민간기업들이 그 수준에 근접하려면 많은 투자와 경험이 복합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민간기업들은 에너지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경제 논리에 따라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며 "석유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상황에서 에너지안보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석유자원개발 전문회사를 신설해 우량자산을 그쪽으로 떼어 내게 되면 석유공사에 남아 있는 부실자산 매각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김 위원장은 가스공사 이관론과 통합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실제 E&P 부문 통합효과를 제외하고는 그 외 사업에 대한 시너지 효과가 미미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노·사·정·전문가 함께 해외자원개발정책 논의하자"=김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국가 에너지안보를 위해 노사정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밀실에서 폐쇄적인 논의를 하지 말고 전문가들을 포함해 정부·공기업·노조가 함께 석유공사가 가진 자산에 대한 면밀한 평가부터 해 보자는 제안이다.

정부는 2001년부터 해외자원의 합리적 개발을 위해 3년마다 10년 단위의 종합적인 기본계획을 수립해 왔다. 현재 5차까지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이 나온 상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2014년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 수립 주기를 3년에서 5년으로 변경했다. 김 위원장은 "계획대로라면 다음 6차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은 2019년에 수립되는데, 법을 바꿔서라도 하루빨리 해외자원개발 방향 자체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며 "지난해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가 책임자를 규명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국가 에너지안보에 관해 진지한 사회적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실적이나 책임회피를 위해 오락가락하는 정책이 아니라 국가미래를 담보하는 해외자원개발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라보고 계획을 세워야 할 때라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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