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정신질환 문제가 아니다. 그 상태가 '중증'임에는 틀림없지만 이것은 '혐오'라 불리는 것이 정확하다.

집 앞까지 찾아와 협박을 일삼고, 불이익과 차별이 뻔히 예상됨에도 '사회통념상 합리성' 운운하며 당사자를 배제한 채 밀어붙인다.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도 피해자는 1년 가까이 고공에서 찬바람을 맞고 있다. 노조파괴를 지시한 사용자에게 면담을 요청한 노동자들은 경찰에 강제로 연행됐다. 성과연봉제 강제도입 사업장과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유성기업 노동자들 이야기다.

서울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 문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여성혐오는 단순히 여성을 싫어하고 증오하는 것을 넘어선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문제의 원인을 여성에게 떠넘기며 피해자 책임론을 만든다.

그런데 이 사회에는 또 하나의 혐오가 있다. 노동혐오 혹은 노동조합 혐오가 그것이다. 가해자는 정부와 사용자다. 노동정책 도입부터 실행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정부와 사용자의 노동혐오는 노골적이며 폭력적이다. 노동조합을 싫어하고 증오하는 것을 넘어선다.

정책을 입안할 때에는 대화 주체인 노조를 배제함으로써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최근 서울시의 근로자이사제 도입에 대한 정부와 사용자의 적대적인 반응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반면 어쩔 수 없이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할 때에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협박과 감금, 회유, 조합원 이간질을 시도하다 이마저도 안 되면 법을 무시하고 일방처리한다. 최근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해 공공기관들이 벌인 행태들이다.

그러나 정작 결과에 대한 책임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 돌린다. 경영부실로 인한 수많은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그리고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을 때 임금이 깎이고 일자리를 잃는 이는 노동자다. 경영진이 책임을 떠안은 일은 거의 없으며, 정부 관료가 처벌을 받았다는 사례는 전혀 들어 본 바 없다.

더욱 끔찍한 것은 여성혐오 범죄자가 그러하듯이 이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눈물을 흘렸다.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노동 4법 처리가 무산되자 "안타깝고 참담하다"고 말한 뒤 "20대 국회가 국민의 눈물을 반드시 닦아 달라"고 울먹였다. 법안을 반대했던 노동자들에게 그 장면은 한마디로 ‘공포’였다. 범죄에 실패한 가해자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라고 얘기할 때 피해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공포. 그리고 그 ‘다시’의 기회는 언제든지 찾아올 것이며,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공포.

강남역 10번 출구를 가득 채운 수많은 포스트잇에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부터, 사회의 문제점까지 다양한 내용들이 적혀 있다. 그중 "17일(사고 당일), 새벽 1시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노동혐오 사회에 사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이와 다르지 않다. 무한경쟁과 성과주의를 통해 노동자를 한 줄로 세우려 하는 그들. 뒤처진 사람들을 저성과자라는 이름으로 자유로이 해고하려는 그들. 그러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인력을 감원해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그들. 따지고 보면 지금의 노동자들은 '우연히 살아남은' 것이다.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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