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21일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개정안은 사업주의 산업재해 발생 신고대상을 "사망 또는 휴업 3일 이상"에서 "사망 또는 휴업 4일 이상"으로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기한도 "산재 발생 1개월 이내"에서 "고용노동부 시정지시 뒤 15일 이내"로 유예했다. 노동부는 산재 발생 보고제도의 조속한 정착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노동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매일노동뉴스>가 현장에서 나타나는 산재은폐 사례를 중심으로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릴레이기고를 게재한다.<편집자>
 

▲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

공공운수노조에는 다양한 사업장이 있다. 공공기관이라 불리는 철도공사·가스공사·조폐공사 같은 공기업과 국민연금·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등 준정부기관, 각 대학병원 등 기타공공기관에서 지자체 청소·상용직에 이르기까지 민간·공공서비스가 어우러져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받는 사업장도 있지만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은 항공법 적용기관이라는 이유로, 엔지니어링이나 시설주차 같은 업무는 행정사무라는 이유로 일부가 적용제외 되기도 한다. 노동자라면 모두 동일한 안전보건상의 조치가 필요함에도 말이다. 물론 예전에는 철도의 일부나 병원도 적용제외를 받았으니 보호 폭이 확대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앞으로는 모든 노동자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받아야 한다.

올해 4월 원자력발전 경비를 하는 조합원이 상담을 받으러 왔다. 발전소에서 냉각수가 넘치는 사고가 있었고, 긴급하게 사고를 정리하고 난 뒤 눈이 아파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런데 처음 병원에 다녀와 하청업체(발전소는 정비·경비·청소 등 업무를 쪼개서 대부분 하청을 주고 있다)에 상황을 얘기했더니 “뭐 별일도 아닌데 그러냐”며 “그냥 일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눈에 자꾸 이물감이 있고 불편해서 병원을 다니면서 발전소측에 이런 상황을 얘기하니 병원비 영수증을 주면 공상으로 처리해 주겠다고 했단다.

 

대체 이 노동자의 상황을 누가 알고 있는 것일까. 현행법으로는 휴업치료가 아니기 때문에 산업재해보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2014년 이전이라면 4일 이상 치료라서 보고대상이 된다). 그러나 원자력이라는 업종 특성상 이후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가능성 때문에라도 근거를 남겨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용역회사는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 위험에 대한 이해도 없기 때문에 올해 4월 상황은 하청·원청 어디에도 기록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을 개정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재해발생 보고를 3일에서 4일로 늘릴 게 아니라 휴업이 아닌 요양도 보고하게 했어야 한다. 사고성 재해가 아닌 직업과 관련한 질환은 요양이 아니라 치료를 받은 사실만으로도 고용노동부에 재해발생보고를 하게 해야 현장 위험상황에 대한 감독과 개선이 가능해진다.

하나 더 산재보험이 아닌 다른 보험들의 재해발생보고 실태는 가관도 아니다. 올해 3월부터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립대병원들은 산재보험이 아닌 사립학교교직원연금으로 재해보상을 받게 됐다. 그러나 2010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재해발생보고를 보면 앞으로 사학연금에서는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노조가 있는 사업장 재해발생보고만 보고되겠구나 하는 한숨이 나온다.

같은 기간 동안 전체 100만명의 공무원 중 23명(심지어 몇 해 동안은 재해보고가 0건)만 재해발생보고가 이뤄졌다. 연평균 4명 정도만 보고됐다는 얘기다. 사립학교교직원은 약 30만명인데 재해발생보고 건수는 24건 수준이다.

서울대병원의 재해발생은 전체인원 5천300명 중 지난해 12명, 2014년 13명, 2013년 5명, 2012년 15명, 2011년 7명, 2010년 14명이 보고됐다. 재해발생보고만으로 보면 공무원이나 사학연금 적용을 받는 노동자보다 많은 재해가 난 사업장인 셈이다.

노동조합이 정확한 산재보고를 요구하고 현장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덕이다. 이렇게 공공부문에서도 산재보고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데 시행규칙이 개악되면 산재은폐는 더욱 심각해질 게 뻔하다.

은폐된 통계로 산업안전보건 정책을 생산한다면 그 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노동부는 재해발생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곳에 친절히 15일 내에 제출하라고 안내하겠다고 한다.

재해가 발생한 기관은 가만히 있다가 노동부가 안내하면 재해발생보고를 하면 된다. 그러면 재해를 보고하지 않아도 되니 산재율이 높아지지도 않고, 그로 인한 감시·감독도 면할 수 있다. 현장 개선에 투자해야 할 예산도 당연히 줄어드는데 어떤 사업주가 스스로 재해발생보고서를 제출할까.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취지를 명심해야 한다. 답은 분명하다. 재해발생보고에 관한 규정을 개악할 게 아니라 원래 취지를 살리는 방법으로 개선하는 일이 노동부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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