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의 경제기적은 절반의 성공이다. 우리는 겉모양상, 하드웨어상, 인프라상에 있어 괄목할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 소프트웨어 그리고 알맹이는 풍요롭고 촉촉하고 부드럽고 사려 깊지 못하다. 뭐랄까. 계산하는 경제이성(economic reason)은 극대화됐지만 나누는 사회이성(social reason)은 척박하다고 할까. 그것은 우리의 경제기적이 다다르지 못한 부분이고 상실한 후 회복되지 못하는 문제다.

최근 발생한 강남 노래방 묻지마 살인 같은 비극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나는 우리 사회 문제의 핵심은 바로 옆사람·이웃·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도무지 이웃은, 이 사회를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은 나에게 무엇인가. 내 앞길을 막는 적대적 경쟁자인가. 나와는 무관한 딴 세계의 존재자들인가. 나와 다른 투표행위를 해서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세상을 이끌어 가게 만드는 짜증 나고 모자라는 이들인가. 내가 짓밟고 이겨야 하는 불가피한 희생양들인가.

그런 부정적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미우나 고우나 나와 다른 이웃은 내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이웃이야말로 나의 거울이요, 그가 잘되는 것이 내가 잘되는 측면을 지니고 있으며, 그의 소중한 생명과 꿈을 지켜 주는 것이 나의 생명과 꿈을 꽃피우는 길이기도 한 그런 존재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의 중요한 측면을 일상에서 얼마나 깨닫고 체화하고 있을까. 필자 자신부터 반성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웃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부정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한,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암울하다. 어쩌면 한국인들이 지금처럼 황폐한 마음을 지니게 된 것은 성장지상주의와 시장맹신주의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나누려는 지혜보다 내가 잘살려는 욕망이 우리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 우리 사회의 경제적·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이들은 그것에 편승한 정책을 펴게 된다. 정치권에서 만일 조금이라도 더 분배 메커니즘을 강화하게 되면 그것이 자칫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를 과도할 정도로 심각하게 하는 지금의 상황은 어쩌면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 수 있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노동조합 친화적인 대표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 EPI)의 데이비드 쿠퍼(David Cooper)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마침 한국경총을 방문한 후였는데, 말인 즉슨 한국이나 미국이나 사용자측 입장을 대변하는 이들의 생각은 똑같다는 것이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그것이 하나같이 경제를 위축시킬 것이라고만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미국의 지역 사용자단체들과 중소업체 대표들은 중앙 수준 사용자단체의 고정된 관념에 반기를 들고 있다고 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초래할 소비진작 효과가 경제 선순환을 위해 유용하다는 인식에 공감하게 되면서 그렇게 됐는데, 그들의 인식 전환에는 연구자들과 학자들이 끊임없이 기존 통념을 비판한 것이 주요했다고 한다.

가난한 이웃들, 그들을 문제시하고 얕보는 식의 태도가 아니라 그들의 소득을 증대시키고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이 더불어 잘사는 길이자 나에게도 유리한 길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청년들을 향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그들이 그 길에서 꿈을 펼치고 스스로 굳건히 서 가도록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잘사는 길이다. 나부터 그러한 코페르니쿠스적 인식 전환을 하고 그것에 기반해 말과 행동을 할 때 우리의 미래가 새롭게 열리고, 정치도 그러한 마음의 길을 따라 밝은 미래를 향한 ‘그린 카펫’을 깔아 낼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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