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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삼모사의 원숭이는 누구인가하태현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충북사무소)
▲ 하태현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충북사무소)

어느 한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사서실무원’으로 근무해 왔던 한 노동자가 어느 날 학교 예산이 더 이상 없으니 그만둬야 한다는 통보를 받게 됐다. 1주일에 8시간 일하는 ‘방과후 강사’로는 계속 근무할 수 있다는 제안과 함께. 고민 끝에 그녀는 이를 거부하고 해고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그녀는 2011년 3월부터 학교도서관으로 출퇴근하면서 하루 8시간 도서관 사서 업무와 함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의 하나인 ‘독서논술교육’ 강사 업무를 병행했다. 그런데 학교는 그녀와 매년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 동안만 사서실무원으로 근무한다는 내용의 근로계약서를 체결했을 뿐 매년 1~2월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방과후 강사'라는 이름으로 4대 보험도 가입하지 않은 채 같은 일을 시켰다.

그러다 지자체가 학교에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지원하던 예산을 사서실무원 인건비에 사용해 왔다는 사실이 자자체 감사에서 적발되자 앞으로는 관련 예산을 지원받을 수 없어 더 이상 고용할 수 없게 됐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근로관계 종료를 통보하게 된 것이다.

학교는 근로계약서에 명시돼 있듯 10개월만 사서실무원으로 채용하고 나머지 2개월은 근로계약서도 없이 방과후 강사로 일했을 뿐이니 계속해서 2년 이상을 근로한 적이 없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된 바 없고, 따라서 여전히 계약직 근로자로 근로계약기간이 종료된 것일 뿐이고, 감사 결과에 따라 더 이상 배정할 예산이 없으니 사서실무원으로는 계속 고용이 불가능하며, 대신 방과후 강사로 일할 수 있도록 했으나 근로자 본인이 이를 거부했으니 그녀 스스로 사직한 것일 뿐 해고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학교의 이와 같은 주장은 법리적으로 결코 인정될 수 없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2개월의 기간 동안 그녀가 수행한 업무와 근무형태는 단지 ‘독서논술교육’을 위한 방과후 강사에 국한되지 않고, 온전히 ‘사서실무원’의 그것과 동일했다. 학교는 오직 2년의 사용제한기간을 회피할 목적으로 10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반복·체결함으로써 기간제법의 취지를 잠탈하는 탈법행위를 했을 뿐이다. 더불어 갱신되거나 반복·체결된 근로계약 사이에 일부 공백기간이 있다 하더라도 그 기간이 전체 근로계약기간에 비해 길지 않고, 계절적 요인이나 방학기간 등 당해 업무의 성격에 기인하거나 대기기간·재충전을 위한 휴식기간 등의 사정이 있어 그 기간 중 근로를 제공하지 않거나 임금을 지급하지 않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근로관계의 계속성은 그 기간 중에도 유지된다(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또한 그의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학교장이 아니라 공립학교의 설립·운영 주체인 지방자치단체이므로 단지 학교 수준의 예산 부족이 해고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근로자인 사서실무원이 아닌 개인사업자로서 방과후 강사로 근무하라는 제안을 거부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계속근로 의사를 표시한 것이지 사직의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그는 정당한 사유 없이 해고됐을 뿐이고, 마땅히 부당해고를 다투는 해고자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중국 송(宋)나라 저공(狙公)이 지혜를 발휘해 원숭이를 속였다는 내용의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고사가 있다. 어쩌면 학교는 스스로 저공이 돼 그 실질에는 변함이 없음에도 ‘사서실무원’과 ‘방과후 강사’를 오가며 그때마다 슬퍼하고 기뻐하는 원숭이의 모습을 그에게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개월의 ‘공백기간’과 개인사업자인 ‘방과후 강사’라는 허상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어리석게도 그것이 부질없는 허상일 뿐 실질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깨닫지 못한 채 스스로의 잔꾀에 취해 크게 기뻐한 학교야말로 조삼모사의 원숭이가 아니었을까. 오히려 학교의 방과후 강사 제안을 뿌리치고 스스로 해고자의 길을 선택한 그가 학교의 잔꾀에 속아 넘어가지 않은 저공의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시때때로 전국의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원숭이 놀음’은 이제 그만 끝냈으면 한다. 원숭이가 생활하는 공간으로 학교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니 말이다.

하태현  jj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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