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긋지긋했다. 칼럼을 통해서도 몇 번을 말했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법안이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나라 경제를 살리는 법이라는 공익광고를 지겹게 봐야 하는 것도 짜증이 났다. 그나마 정부가 제출한 법안이 19대 국회가 마감되면서 자동 폐기된다는 것에 안도했다. 집권 새누리당이 과반수인 19대 국회를 폐원하기 전에 노동개혁 법안의 처리를 밀어붙이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던 나는 모처럼 짜증 없이 안도했다. 그런데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주 박근혜 정부의 장관과 청와대 수석은 19대 국회에서 노동개혁 법안 처리가 무산된 것이 ‘참담하다’며 20대 국회에서 다시 추진하겠다고 노동개혁 법안을 말했다. 나는 다시 노동개혁이라는 말에 짜증이 났다.

2. 김현숙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은 지난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브리핑을 갖고 “노동개혁은 일자리 개혁인데, 19대 국회에서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며 눈물까지 흘리면서 “20대 국회에서는 노동개혁 법안을 통과시켜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이에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19대 국회에서 노동개혁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폐기되는 상황을 맞아 가슴이 아프다”며 “노동개혁은 우리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저성장-저고용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 노사정이 공감해 추진한 것이기에 시급히 완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20대 국회가 개원하면 빠른 시일 내에 당정협의를 거쳐 노동개혁 법안 재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청와대와 정부의 노동개혁 4대 입법 재추진은 총선 민심을 저버린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20대 국회가 개원하면 야당과 공조해 노동악법 저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고, 김준영 한국노총 대변인은 김현숙 수석의 눈물에 대해 “악어의 눈물”이라고 말했다고 뉴스에 보도됐다.(이상 매일노동뉴스 2016.5.23.자 참조). 사람을 잡아먹은 뒤 그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는 이집트 나일강에 사는 악어의 눈물이 이 나라 정부 위정자의 눈물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을 정도로 오늘 이 나라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에 대한 노동계의 반감은 높다. 그럼에도 권력의 의지는 여소야대의 상황에서도 추진하겠다고 여전히 높기만 하다.

3. 노동개혁 법안, 그 첫째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다. 통상임금과 근로시간에 관한 것이다. 통상임금은 통상임금의 개념을 규정하고 시행령에 제외금품을 위임해서 규정하도록 근로기준법에 명시하는 것이다. 그 개정 취지를 보면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판결을 토대로 이를 명확히 입법화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노동부 예규 ‘통상임금 산정지침’ 등을 통해 노동부가 통상임금 범위를 협소하게 정해 놓고 이를 노동현장에서 집행했다. 이에 따라 사용자들은 위법하게 법정수당을 산정해 지급해 왔다. 개정안은 대법원 판례 기준에 따라 지급하도록 그 판례 기준을 근로기준법에 입법하겠다는 취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부 장관은 참담한 심정으로 가슴 아프다고 기자들에게 말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 근로기준법안이 국회에서 입법되지 않아도 노동부 장관의 권한만으로 얼마든지 노동부 예규·행정해석을 판례 기준에 부합하게 변경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굳이 국회에 입법해 달라고 사정할 일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근로시간에 관한 근로기준법안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 법안이야말로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법안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일요일 등 휴일도 1주일에 포함되는 것으로 입법하겠다는 것이다. 종전에 노동부는 행정해석 등을 통해 근로기준법에서 1주일은 일요일 등 휴일을 제외하고 나머지 날만을 포함한다며 법정근로시간·연장근로시간·휴일근로 등에 관한 법 집행을 해 왔다. 노동부는 1주간에 68시간까지{법정근로시간 40시간(근로기준법 제50조)+연장근로 12시간(근로기준법 제53조)+16(8*휴일 2일)시간}가 법으로 허용한 최장 근로시간이라고 우겨 왔던 것이다. 이것을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휴일을 1주간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고(물론 그러면서 특별연장근로를 일정기간 허용해 주 60시간까지 근로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며 사용자를 위한 특별한 배려도 법안에 포함하고 있는데 여기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법으로서 의미도 상당히 퇴색하고 만다), 이것이 19대 국회에서 무산됐다고 노동부 장관은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다. 그러나 1주일이 일요일 등 휴일까지 포함한 것이라는 것은 이 나라에서 노동부를 제외하고 누구나 안다. 그러니 국회에서 근로기준법안을 통과해 주지 않는다고 가슴 아파할 것 없다. 노동부 행정해석만 1주간의 근로시간에는 휴일근로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 바로잡으면 될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1주간 52시간(40시간+12시간)으로 이 나라에서 최장 근로시간은 단축될 수가 있다. 이처럼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노동부가 자신이 잘못한 일을 스스로 바로잡으면 그만이니 이보다 더 쉬운 노동개혁이 어디 있겠는가.

다음으로 고용보험법 개정안인데, 지급기준인 실직 전 평균임금을 높이고, 지급기간을 확대한다는 것이고, 실업급여 보장 수준을 높이는 것이니 일자리 창출 대책은 아니다. 더구나 이 법안에서는 현행 이직 전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이면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을 이직 전 24개월 동안 270일 이상으로 구직급여 기여요건을 강화해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출퇴근 재해를 보상하겠다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다. 역시 일자리 창출과는 무관하다. 설마 이런 법안들이 아깝다고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눈물을 흘렸을 리 없다.

남는 것은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다. 기간제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 더해 2년 연장을 허용하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개정안이고, 고령자·전문직·뿌리산업 등에 파견대상을 확대하는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이다. 사용자로 하여금 비정규직을 보다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는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다. 입법된다면 비정규직 일자리는 창출될 수 있겠다. 정규직 일자리는 줄 게 된다. 지금 이 나라 사업장들이 정규직을 사용하면 대거 파산·폐업하고, 비정규직을 사용해야 운영할 수 있다면 이런 비정규직 확대법을 시행해야만 일자리가 유지될 수 있다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러나 열악한 중소 영세사업장이야 이미 정규직이라도 최저임금 수준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 그리고 비정규직 관련법은 명시적으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대우를 금지하고 있다. 노동부 등 정부가 똑바로 법집행을 한다면 비정규직을 사용한다고 해서 사용자가 인건비를 절감할 일도 없다. 그러니 사용자를 위해 비정규직을 폭넓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서라도 일자리 창출을 유인할 수 있는 비정규직 관련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국회 입법이 무산됐다고 해서 이런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노동현장에서 집행하는 장관과 청와대 수석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을 흘린 거라면 그것은 비정규직법을 비정규직 차별 금지의 법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차별의 법으로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것은 비정규직 관련법이 금지한 차별적 대우가 공공연히 이 나라 사업장들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걸 말한다. 노동현장에서 현행 비정규직 관련법을 제대로 집행해 오지 않았다는 걸 보여 준다. 이것은 비정규직 관련법을 차별의 법으로 법집행하는 권력이 잘못 알고 있지 않다면 나타날 수가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노동부 장관과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은 노동현장에서 올바로 법집행할 일을 고민해야 했다.

4. 노동부 장관을 “가슴 아프”게 하고, 그리고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의 “악어의 눈물”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나는 다시 한 번 노동개혁 관련 법안을 읽어 봤다. 도대체가 노동자의 고용 등 권리를 위해 일해야 하는 장관과 수석으로서 안타깝다고 말할 법안이 아니었다. 노동자권리를 위해서 법이 자신에게 명령한 대로 집행해야 함에도 그걸 사용자를 위해 왜곡해서 집행하거나 방치해 왔다. 노동개혁 법안의 취지는 부당한 노동부 예규와 행정해석을 법과 판례 기준에 따라 변경하고 현행법을 제대로 집행하면 달성될 일이다. 그럼에도 법이 부여한 자신의 일을 하지 않은 채 노동개혁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고는 국회를 탓하고 있다. “근로자의 고용을 증진”하고,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도록 헌법(제32조)이 명령한 국가의 책임을, 정부가 노동개혁을 말하며 그 법안을 입법하지 않는다며, 국회에 전가하고, 그 법안을 반대하는 자에 전가하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개혁은 권력과 사용자 자본이 청년실업과 일자리·경제 등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노동에 전가하기 위한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고서 보니 가슴이 아프다는 것도, 눈물을 흘리는 것도 무엇 때문이었냐고 솔직히 말해 달라고 새삼 묻고 싶어진다. 악어는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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