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박근혜 정권은 얼마 전 우리나라가 "경제위기와 안보위기가 중첩된 복합위기에 처했다"며 잔뜩 위기감을 부추겼다. 아마 총선에서 지지층과 부동층의 표를 결집하기 위한 꼼수였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은 안보위기 상태가 아닌가. 아니다. 정말로 심각한 안보위기 상태다. 그러나 너무 잦은 안보위기설로 위기불감증에 빠진 대다수 국민은 안보위기를 느끼지 못한다.

제7차 조선노동당대회 직전인 5월3일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는 '미국은 조선반도에서 최악의 전쟁 국면을 조성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제목의 비망록에서 "지금 조미 사이에는 생사 판가름을 위한 물리적 결산만이 남았다"고 밝히면서 "미국의 처참한 말로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했다. 또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는 “남조선 당국이 제도통일을 고집하면서 끝끝내 전쟁의 길을 택한다면 정의의 통일대전으로 반통일 세력을 무자비하게 쓸어 버릴 것이며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성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당대회를 마친 후인 5월16일에는 정부·정당·단체 공동성명을 통해 "조국통일에는 평화적 방법과 비평화적 방법이 있으며, 우리는 어떠한 경우도 다 준비돼 있다"며 "남조선 반통일 세력이 동족의 선의에 대결로 맞서며 평화적 통일 기회를 차 버린다면 조국통일대전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천만군민의 의지"라고 천명했다.

한편 미 오바마 정권은 북한의 정권붕괴를 겨냥해 이란에 가했던 것과 같은 강도의 높은 경제제재를 북한에게 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스위스와 러시아가 대북 금융거래 제한 방침을 발표했다. 그리고 오바마를 잇는 미국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안보 보좌역인 설리번은 "집권 시 북한 핵 문제를 외교정책의 최우선에 놓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제재 움직임과는 별개로 미국 국가정보를 총괄하는 클래퍼 정보국장이 5월 초 한국을 방문해 당국자들과 북·미 평화협정 체결문제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만하면 충분히 위기적이다. 게다가 총선 직전에 발표된 집단탈북자 13명이 자진해서 탈북한 것이 아니라 국가정보원에 의해 납치된 것이라는 북측 주장과 이를 부인하는 남측 간에 외교적 긴장이 가파르게 고조되고 있다. 소문으로는 한 명이 단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어떤 위기든 위기는 해소돼야 한다. 그러나 위기의 진정한 해소는 위기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이를 기초로 올바른 처방을 도출해 위기를 ‘해결’해야 이뤄질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미봉적 위기 해소는 요즘 유행하는 치유(힐링)가 그렇듯이 머지않아 위기 재발을 가져올 뿐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안보위기는 과연 무엇이, 누가, 어떻게 조성했는가. 사회적 문제나 모순의 원인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문제나 모순의 구조를 꼼꼼하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분석하는 방법과 현실에서 한 발 떨어져 그것이 만들어지고 발전해 온 역사적 과정을 조망하는 방법이 있다. 과학을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다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안보 문제와 관련해 특히 후자의 방법에 의한 통찰이 부족하다.

한반도 안보위기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면서 시작됐다. 물론 그 이전 시기 청국과 러시아와 일본이 이 땅과 인민을 차지하려고 노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 쟁패전은 일본의 승리로 귀착됐다. 그러나 이 땅과 그 인민은 다시 미국과 일본의 쟁패전에 휘말리게 됐다. 가쓰라-태프트 밀약 당시 일본이 러시아를 내쫓고 조선을 차지하고, 미국이 스페인을 내쫓고 필리핀을 차지하기로 미국과 일본이 야합한 지 40년 만에 이런 정세변화가 일어났다. 바야흐로 미 제국주의가 세계의 패권자로 등장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현재 한반도 안보위기는 이렇게 미국이 세계 패권자가 되기 위해 동아시의 지배자가 돼야 하고, 그를 위해 조선을 식민지로 소유해야 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이러한 미 제국주의의 야심을 최초로 국제적으로 드러낸 것이 카이로 선언이었다. 이것은 조선을 자유·독립시키겠다는 공약이라는 허울을 쓰고, 신탁통치라는 형식을 빌려 미국 주도로 40년간 (신)식민지지배를 하겠다는 밀약이었다. 그런 야욕에 따라 일본의 항복을 앞두고 8월10일 심야에 황급히 미국에 의해 38선이 분단선으로 그어졌다. 그 한 달여 후인 9월8일 38도 이남에 미군이 진주하면서 점령과 4년간의 군정이 이뤄졌고, 그렇게 미군정으로 만들어진 식민지자본주의 지배체제를 지속시키기 위해 48년 8월15일 분단정부가 수립됐다. 이런 분단 상태는 필연적으로 50년 6월 통일전쟁으로 귀결됐다. 그 내전은 미국이 유엔군의 깃발을 달고 개입함으로써 중국이 참전하는 국제전이 됐고, 그 결과 분단체제가 고착화하면서 세계적으로 냉전구조가 형성됐다.

냉전체제는 반세기 가량 지속되다 90년대 초 소련이 붕괴하면서 해소될 듯 했으나 미 제국주의의 유일패권 추구로 인해 지속되고 있다. 한반도 위기 문제는 좌우 이념대립의 문제이기 이전에 미 제국주의 세계지배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안보위기는 미 제국주의의 세계지배와 유일패권 추구가 포기돼야만 해결될 수 있다. 따라서 전쟁연습은 중지돼야 하고, 북·미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하고,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 미제 강점기가 70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이렇게 돼야 할 때가 됐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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