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전에는 40% 정도에 불과하던 비정규직노동자가 최근 들어 60%까지 육박하고 있다.

700만~800만명이나 된다는 얘기다.임금도 정규직의 60% 정도만 받으며 각종 기업복지 혜택이나 노동법적 보호도 받지못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은 전체 비정규직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남성들임금의 70%도 받기 힘든 형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대기업 ㅍ사의 한 협력업체에 근무하는 일용직 노동자 김씨가 점심식사를마친 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같은 작업장에 근무하는 원청업체 ㅍ사 직원들이식사를 마치고 나오다가 김씨에게 `야 임마, 너 지금 할일 없지, 족구하게 이리와서 라인 좀 그어라'고 했다. 이에 김씨가 `당신들이 할 일을 왜 내가 하느냐'고항의하자 직영 직원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일이지 뭐가 그렇게 말이 많아! 일 그만하고 싶은 모양인데, 어느 업체 소속이냐? '고 캐물으며 윽박질렀다”는보도가 있었다.

이 놀라운 일화에서 우리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같은노동자로 인식하지 않고 `차별 대우'를 하는 것에 할 말을 잃는다. 하지만 하루10시간 내외를 `쎄빠지게' 일하면서도 날마다 새 희망이 샘솟기보다는 고용불안과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려야 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상을 살펴보면 앞의 행위가이해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정규직이 평소에는 별로 하고 싶지 않던 이른바 `회피작업' 공정들(예컨대,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작업)을 하청이나 용역 등 비정규직에떠맡기다시피 한 바 있고, 구조조정과 같은 위기시에 고용불안에 시달릴 때는 일단비정규직 해고를 수용하는 형태로 자신들의 고용 안정을 위한 `바람막이'로 활용해왔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일이지 …' 식의 `내부파시즘'이 작동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내가 최근에 공단에서 직접 만난 한 노조활동가는 “노조 대의원들 중에는 그권력을 남용한 나머지 하청업체 사장들을 위협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술집에서 술을 먹고 하청업체 사장에게 전화를 해 술값을 갖고 나오라고요구하기도 한다”며 혀를 껄껄 차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일은 지극히 드물다고본다. 그러나 노동자의 일상 의식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면 도대체 노동의 미래는누가 열어나갈 것인가?

한편, 이러한 정규직들의 비정규직 차별이 말하는 진실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존하는 현실 그 자체로부터 자본이 노동에 대해유연성과 통제력을 높일 수 있는 데 있다. 노동을 다양하게 분할함으로써 자본의필요에 맞게 노동을 부리는 것이다. 결국, 노동시장이나 노동과정에서 혜택을 받는자와 차별을 당하는 자는 모두 다 차별구조(=자본)의 희생자들임을 꿰뚫어보아야한다.

따라서 차별과 위계 질서 속에서 좀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노력하는 것은자본의 그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꼴이다. 중요한 것은 차별과 위계의 그물망자체를 거두어들이는 것, 그리하여 모두가 한 형제자매로, 이웃과 동료로, 친구로거듭 나는 것이다. 쉽지는 않지만 ….

한편, 노사정위원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특별히 다루기로 했다고 한다. 만일 노동정책적으로 이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더 이상 임기응변책이아니라 근본 대책이 나와야 한다. 예컨대, 노동시장 `유연화'를 꼭 도입하려면노동자 삶의 `안정화'를 전제로 해서 하라는 것이다. 구미 각국의 노사관계전문가들이 말하는 `유연 안정성'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시간에 3~4시간만 유연하게 일하고도 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되며 노동권이보장된다면, 굳이 평생 동안 몸과 마음을 바쳐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고자(평생직장의 확보) `고용안정 투쟁'까지 하겠는가? 천천히 가더라도 옳게 갈 일이다.

강수돌 고려대학교 교수, 노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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