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국제노동기구(ILO) 헌장(Convention)의 핵심 중 핵심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과 단체교섭권에 관한 협약(제98호)입니다. 핵심협약은 지속가능한 발전과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출발점입니다.” 아마도 이번 교육 과정에서 가장 많이 접한 강의 내용일 것이다. UN 지속가능개발목표(SDG) 의제 중 목표 8(양질의 일자리)의 8번째 세부목표(8.8) “노동권 보장”에 직접적으로 해당한다.

ILO 헌장의 비준 여부는 강사들이 교육생을 상대로 수시로 묻는다. 대부분은 비준하고 국내에 적용하고 있다고 답을 한다. 통계상 80%가 넘는 국가에서 제87호와 제98호를 비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국에서 집행하는 현실이야 속속들이 알 길은 없지만, 우리나라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경제 여건이나 노동자들의 소득수준이 낮은 나라들도 87호와 98호를 실행하고 있다.

부끄럽다. “우리도 핵심 협약은 비준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ILO에 가입한 이후 다섯 번 정부가 바뀌는 동안 노동기본권의 핵심 중 핵심협약조차 비준하지 않은 게 노동기본권에 관한 우리의 현재 성적이다.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결국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래서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됐다는 우리나라 얘기를 듣고 놀라는 참가자들이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노동정책과 공공·금융부분에서의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 사례를 소개하자, “노사정을 기본으로 한 사회적 합의 정신에 반한다”며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169개에 이르는 SDG 세부 의제에 모든 참가국이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절대빈곤과 기초공교육 같은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된 단계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남미의 많은 국가들은 UN의 협조 아래 국가경제개발 추진에 한창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교육과정에서는 ILO와 UN과의 관계, 각국 노동조합 차원에서 UN이 개발계획을 성공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에 관해서도 적지 않은 강의가 있었다.

그에 비해 이주노동자 문제는 아마도 가장 많은 나라들이 공감했다. 특히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필리핀·인도네시아·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온 참가자들과 진지한 논의가 진행됐다. 좋은 일자리라는 게 국내 노동자뿐 아니라 외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같은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

자국 노동기본법이 외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똑같이 미쳐야 한다는 게 SDG(16.3)의 내용이다. 국내법이 곧장 적용되기 어렵다면 적어도 해당 국가의 제도가 이들에게 미치도록 해야 한다. 편차가 있는 부분에 대한 해결 기준은 ILO 협약이나 국가 간 협약을 통해서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는 물론이고 지금도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외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권 문제에 정부가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취업비자를 얻어 공식적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상당하다. 예를 들어 관광취업(워킹홀리데이)이라는 이름으로 더 좋은 미래를 찾아 떠나는 청년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는 해외 이주노동자 수를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어떤 노동환경에 처해 있는지는 간간이 전하는 충격적인 뉴스에서나 알게 될 뿐이지 않는가.

그리고 흔히 부르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논의는 없었다고 본다. 여전히 나쁜 일자리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는 게 정책의 대부분이다. 적지 않은 정책은 이주노동자를 위한 ‘시혜적인’ 것으로 포장했다.

노동조합 차원에서의 책임과 역할도 새롭게 할 필요가 크다. 갑갑해지는 노동현실 탓도 있지만, 그동안 노조는 조합원들의 권익보장에만 관심을 가진 게 사실이다. 노동현장의 일원으로 이주노동자의 지위를 인정하고 함께해야 한다. 실천적으로는 해당 국가 총연맹 단위에서 시작하면 좋겠다.

마침 한국노총(FKTU)의 활동을 소개할 시간이 있었다. “다음달 베트남노총과 국내에 이주한 베트남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호를 위한 협약(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같은 노동자로서 이주노동자 문제에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2주간 교육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배운 것에다 간간히 검색하는 국내 노동뉴스를 겹쳐 보게 된다. 이곳부터 서울까지의 거리만큼이나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자리라는 목표는 여전히 멀게만 보였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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