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주한미군기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2018년까지 경기북부 미2사단과 용산미군기지가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는데, 정작 기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고용과 이전대책은 외면받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이전 대상 기지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들의 이전시기와 규모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전대책도 없다. 부서별로 시간제 일자리 전환과 강등을 통보하는 실정이다.

한국 정부는 미군기지 평택 이전에 혈세 34조원을 퍼부었다. 그럼에도 주한미군의 일방적 노무관리에 좌지우지되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생존권 문제에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있다.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이 "정부가 우리를 버렸다"며 생존권 투쟁에 나선 이유다. 이들은 2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대규모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개최한다.

◇"하루아침에 정규직에서 파트타이머로"=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외국기관노조연맹 사무실에서 만난 최응식(50·사진) 주한미군한국인노조 위원장은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처지를 "21세기 노예"라고 표현했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제17조3항에 따라 한국 노동법의 보호를 받도록 돼 있지만, 현실에선 미국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고용과 노동 3권을 유린당하는 '노예'가 바로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이라고 했다.

최 위원장에 따르면 주한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은 한국 정부가 인건비의 75%를 부담하는 '충당직원'과 주한미군이 영업이익을 가지고 급여를 주는 '비충당직원'으로 분류된다. 주한미군은 수년 전부터 충당자금 부서를 외국계 업체에 아웃소싱하고 있고, 비충당자금 부서에서는 경영상태와 무관하게 강등과 시간제 일자리 전환을 하고 있다. 주한미군 교역처(AAFES)와 미8군 은행이 대표적이다. 교역처는 이전 대상 기지에 근무하는 직원 600여명 중 절반을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하고, 직급을 한 단계씩 강등하겠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교역처는 지속적으로 흑자경영하고 있는 데도 기지이전을 하면 원하는 만큼의 매출이 안 나올 것 같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위비 분담금으로 수천억원의 이자놀이를 한 사실이 밝혀진 미8군 은행은 지난달 7월1일자로 정규직 50%를 주 30시간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하겠다고 통보했다. 전환 대상은 전체 직원 100명 가운데 7급 이하 직원 50명이다. 최 위원장은 "은행 직원들 모두가 한 단계씩 직급 강등을 하면서 고통을 분담하겠다고 제안했는데도 거부당했다"며 "평균 40대인 직원들에게 시간제로 일하라는 건 나가라는 소리"라고 말했다.

▲ 정기훈 기자


◇"한국 정부, 강 건너 불구경"=교역처와 미8군 은행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면, 이전 대상 노동자 5천여명의 고용불안과 생계대책 문제는 산 너머 몰려오는 쓰나미다. 최 위원장은 "지금은 교역처와 은행에서 문제가 불거졌지만 이전 시기가 다가올 수록 다른 부서에서도 대량감원이 잇따를 게 뻔하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주한미군과 평택시에 34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혈세로 지출하면서도 한국인 노동자들의 생활정착자금이나 거주비에는 단돈 10원도 책정하지 않았다"며 "평택 미군기지에 한국인 노동자를 위한 식당 하나만 지어 달라는 요청에 '이미 끝났다'고 대답하는 게 한국 정부"라고 성토했다.

"그동안 내놓을 만큼 내놓고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그런데 이젠 밥그릇까지 내놓으라고 하네요. 더 이상 참지 않을 겁니다. 국민 세금을 가지고 미국 배만 불린다는 게 말이 됩니까? 자국민을 버린 한국 정부를 상대로 지속적인 투쟁을 벌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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