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실장
(변호사)

지난 9일부터 이탈리아 토리노에 위치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국제교육센터(ITCILO)에서 보내며 지속가능개발목표(SDG) 교육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SDG는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서 머리글자를 땄다. 중남미·아프리카·아시아·오세아니아의 40여 국가에서 온 전문가·활동가들이 무려 2주간이나 이 교육에 참가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제연합(UN) 개발정상회의에는 193개 국가가 참여해 2030년까지 세계 모든 곳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겠다고 발표했다. SDG는 제1목표인 ‘가난 퇴치’를 시작으로 기아·건강·교육과 생활에서의 평등, 여성에 대한 차별 금지, 전쟁 종식 등 모두 17개에 이르는 핵심목표(Goal)와 이를 위한 169개의 실천방안(Target)으로 구성됐다.

솔직히 처음 들어 보는 표현이었다. 교육에 참여하기 전에 국내에서 SDG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외교부에서만 간략하게 소개하는 정도였다. 이상했다. UN이 주도하고 그 수장인 반기문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임에도 우리는 이런 선언이 있었다는 자체를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니 말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SDG가 제대로 실현되는지를 확인하는 19개 시범국가에 포함돼 있다.

과연 SDG가 무엇이기에 ILO에서 정규 과정으로 교육하려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다음주까지 교육을 받으면 보다 명확해지겠지만, SDG와 관련해서는 개별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것들을 찾고 확인하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목표와 실천방안 대부분이 저개발·개발도상국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기아문제(제1목표)와 물 문제 해소(제6목표)를 주요 목표로 정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여건이다. 이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가난과 기아, 기초보건 문제는 극복하지 않았는가.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선진국 수준이라고 평가받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주요 20개국(G20) 등 선진국가들 중심의 국제기구 회원이기도 하다. “한국은 휴대전화에서 일본을 제치는 등 고도의 산업기술이 발달한 선진국”이라고 치켜세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만 몰랐을 뿐 이미 ‘선진국’으로 대접받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교육에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하는 선진국에서 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아마 ILO에서 적극적으로 유치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선진국들은 국가 간 불평등 해소(제10목표)와 같은 중요 목표의 직접적인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들의 발전경험을 소개하고 토론할 수 있다면 더 생산적인 교육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움도 크다.

“왜 우리는 SDG를 잘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해 보자.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우리나라 실정과는 맞지 않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선언에 참여하지 말았어야 했다. 더구나 SDG를 각국 실정에 맞게 선별적으로 수용하면 그만이다. 정부는 이와 같은 구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겠나.

그럴 리는 없길 바라지만, SDG 목표에는 우리 정부의 뜻에 반하는 것들도 적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특히 노동 분야가 그렇다. 제8목표에서는 “충분하고 질 좋은 일자리를 전제로 한 노동자와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선언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경제성장은 노동자의 좋은 일자리가 필수적이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를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표현을 빌리자면 디센트 워크(DECENT WORK)라고 할 수 있다. 영어에 익숙지 않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말이다. 최근 10여년간 한국노동연구원 같은 국책연구기관에서도 관련 주제를 자주 소개하고 있기다. 참고로 ILO에서는 디센트 워크를 SDG의 별칭으로 사용할 정도로 양자는 밀접하다.

긴 말이 필요 없다. 우리나라 노동현장에서는 반드시 그리고 시급히 실천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여기 ILO에서 배우는 좋은 일자리는 이렇다. 단순한 일자리 숫자 늘리기가 아니다. 반드시 노동권기본 보장을 기본으로 사회적 대화기구에 노동자들의 참여가 보장돼 만들어진,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진 일자리여야 한다.

답은 간단하다. 실천하면 충분하다. 우리가 참여하겠다고 한 마당에 주저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고 이렇게 반대로 간다면 세계를 상대로 약속 파기를 하는 꼴이 될 것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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