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공기업이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하고 상신브레이크·발레오전장지회의 산별노조 탈퇴를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오면서 산별노조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속노조는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와 중앙교섭을 벌이고 있지만 교섭 대상은 전체 조합원 16만명 중 1만6천여명에 불과하다.

노동계와 학계·시민사회가 정체된 산별노조운동의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한국산업노동학회와 민변 노동위원회·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대안적 산별교섭 모색을 위한 노사정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산별교섭 활성화 방안과 금속노조가 추진하는 현대자동차그룹 공동교섭을 어떻게 볼 것인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산별노조 교섭요구 불응 못하게 노동관계법 고쳐야"

발제를 맡은 이승협 대구대 교수(사회학과)는 산별노조 위기의 원인을 노조 내부와 제도적 이유로 접근해 해석했다. 이 교수는 "산별교섭 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아 교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이 점이 다시 산별조직 체계 자체를 흔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산별노조가 교섭을 요구하면 사용자들이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노동관계법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왜 산별노조가 필요한지 체감시켜 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기업지부를 해소하고 지역지부 중심으로 산별노조를 운영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이 교수는 "기업지부를 해소한 뒤 지역지부를 중심으로 조직을 몇 년간 운영해 조합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것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지부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안정적인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기에는 지금 산별노조가 처한 현실이 만만치 않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사용자단체들을 산별교섭으로 유도하기 위해 교섭비용을 줄여 주는 방안을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금속노조 현대차그룹 공동교섭 '화제'

금속노조가 추진하는 현대차그룹사 공동교섭에 대한 법적 쟁점과 사회적 의미도 도마에 올랐다.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또 다른 발제에서 "그룹은 하나의 사업이 될 수 있고 그룹을 지배하는 자를 사용자로 볼 수 있다"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단체교섭의 범위를 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룹교섭을 거부하는 행위도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금속노조의 공동교섭 요구에 불응하는 현대차그룹의 태도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토론자로 나선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도 이 같은 주장에 동의했다. 송 변호사는 "노조가 특정한 교섭방식(이를테면 그룹사 공동교섭)을 요구하는 것 자체를 이유로 사용자측에서 교섭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교섭거부 이유로 볼 수 없다"며 "금속노조 그룹사 교섭 요구는 현대차그룹이라는 동질의 기업집단을 상대로 각 사업자들에게 공통된 사항에 대한 집단교섭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교섭을 해야 할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박유기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은 "두 분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그룹을 상대로 바로 부당노동행위 고발을 하지 않는 것은 현 사법부가 그룹 교섭을 인정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라는 고민을 털어놨다.

"정체된 산별교섭 돌파구 마련 위해 그룹사 교섭 요구"

노조는 지난 10일 현대차그룹 소속 지부·지회에게 각 개별사를 상대로 대각선 교섭을 요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교섭이 결렬돼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한 다음 7월 중순께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집중투쟁을 전개한다는 구상이다.

박유기 지부장은 "정체된 산별교섭을 어떻게 돌파할지를 고민하다 재벌의 상징인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공동교섭을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라며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전부 참여하는 완전한 중앙교섭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박성국 매일노동뉴스 대표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현대차그룹·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고용노동부는 토론회 참석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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