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은정 공인노무사(사무금융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대법원 2015다252891 퇴직금청구의소



최근 대법원에서 위임계약을 맺은 채권추심원도 회사로부터 구체적인 업무지휘를 받았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아 퇴직금 등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이 유의미한 이유는 위임계약을 맺고 채권추심 활동을 하는 추심원이라도 실질적으로 근로계약관계라면 근로자라고 명명했기 때문이고, 계약의 형태와 상관없이 실질적 업무 지휘·통제 여부를 기준으로 근로자성을 판단했고, 종래의 사업장들이 근로자성을 부인하기 위해 택한 전산화 방식을 실질적 지휘·통제 근거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1. 배경설명

2008년에 대법원은 “근기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위임 또는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하고, 여기에서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해 업무를 대행케 하는 등 독립해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졌는지 및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 근로 제공 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그 정도,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의 여러 경제적·사회적 조건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다만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했는지, 사회보장제도에 관해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등의 사정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기 때문에 그러한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06.12.7 선고 2004다29736 판결, 대법원 2007.3.29 선고 2005두13018·13025 판결 등 참조)”고 판시한 바 있다.

이 판결이 나온 후에 대부분의 신용정보회사는 채권추심직 계약형태를 위임계약직으로 전환했다. 종래에 계약직으로 채용된 자들은 파견직으로, 파견직은 위임직으로 계약형태를 변경했는데 이유는 근로자성을 부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회사는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근로자성을 희석시키기 위해서 출퇴근 관리와 실적관리를 전산으로 대체했고, 기본급을 없애고 건당 성과보수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보수체계도 변경했다. 위임계약직에 대해서는 4대 보험을 가입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들의 업무내용이나 방법이 달라진 바는 거의 없었다.

2.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계약의 형식이 중요하지 않고,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에서 업무를 진행했는지 여부가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실질적 판단기준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1) 계약의 형식이 위임계약처럼 돼 있지만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으면 ‘근로자’임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근로자성을 판단할 때 ‘외적형태 즉,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했는지, 사회보장제도에 관해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등의 사정은 사용자가 경제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그러한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06.12.7 선고 2004다29736 판결 참조)’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대상판결은 앞의 판결에 더해서 계약의 형식이 ‘위임계약’으로 돼 있는 것도 근로자성 판단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는 많은 사업장이 실제 업무 내용이나 형태가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계약형태를 위임계약으로 변경하고 있는 사례에 비추어 보면 채권추심원들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측면에서 매우 유의미한 판결이라 할 수 있다.

2)실질적 종속관계에 대한 판단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살펴본 후에 “업무수행 과정에서 수수료 차감, 다른 팀으로의 이동, 이미 배정된 채권의 환수, 새로이 배정될 채권의 감소 등과 같은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 회사 차원의 캠페인·조기출근·야근·토요일근무 등 회사가 업무실적 향상을 위해 동참을 요구하는 각종 조치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보인다”고 했고, 이러한 사실관계를 업무를 구체적으로 지휘하고 관리·감독받은 징표로 봤다.

실질적인 업무수행 과정이 사용자의 지배·관리를 받고 있었는지 여부가 중요한 판단의 근거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업무통제방식이 당사자의 업무수행 과정에서 어떻게 지휘되고 작동됐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는 당사자가 소명하고 입증해야 하는 측면이 크다. 대법원은 변론주의 원칙상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실을 증명할 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는 등의 경우에는 채권추심원의 근로자성이 부정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를 살펴서 근로자성 여부를 판단했다. 이 점에서 엿볼 수 있는 대법원의 태도는 근로자보호의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이 사건 사용자는 위임계약하에서 근로자성을 회피하기 위해서 전산으로 공지하고, 보고하도록 했다. 그러나 기록된 결과물이 곧 당사자와의 계약을 지속할지를 결정하는 근거였기 때문에 전산공지만으로도 채권추심직군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사실관계를 피력했던 것이 사용자의 업무 지휘·통제나 관리·감독을 인정받는 결정적 근거가 된 것이다. 향후 소송을 준비하는 당사자가 살펴야 할 지점이다.

3) ‘전산화를 통한 채권관리시스템’을 업무 지휘·통제의 근거로 인정했다. 앞에 인용했던 2008년의 선행판결을 한 후 대법원은 2009년에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엇갈린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① 원고가 근무기간 중 자신이 제공한 근로의 내용이나 시간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채권회수 실적에 따른 성과수수료만 지급받았다는 점 ② 성과수수료를 아예 지급받지 못한 기간도 있는 등 성과수수료 자체도 기간에 따라 일정치 못하고 크게 차이가 나고 있다는 점 ③ 피고는 원고에게 사무실 등 업무편의를 제공했을 뿐 업무의 수행방법과 시간·장소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감독을 한 사실이 없다는 점 ④ 원고가 근로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고, 4대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원고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09.5.14. 선고 2009다6998판결).

위 판결에서, ①②④는 실질적 사용종속관계 판단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이는 사용자가 우월적 지위에서 정할 여지가 크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은 쟁점은 ‘업무의 수행, 시간·장소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감독이 사용종속관계에 있었는지 여부였다. 2008년 대법원이 정규직 직원을 팀장으로 한 팀으로 채권추심원을 조직한 후 팀장들이 채권추심을 독려하는 등 회사가 채권추심원을 지휘·통제했으므로 근로자로 봤던 것과 달리, 2009년 판결에서는 채권추심원을 지휘·감독한 것으로 볼만한 사실이 거의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근로자성을 부인한 이유였다.

이번 판결에서도 원심은 2009년 대법원과 같이 원고들이 종속적인 지위에서 피고에게 근로를 제공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으나, 대법원은 ‘채권추심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목표설정부터 채권추심 업무 처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 과정을 채권관리시스템에 입력하게 했던 것’은 원고들의 업무를 구체적으로 지휘하고 관리·감독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계약기간을 6개월로 정해 반복적으로 재계약 또는 기간연장을 하는 과정에서 업무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 계약이 해지될 수 있었고, 채권관리시스템에 개인별로 등록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 접속한 후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채무자의 정보수집, 채무자에 대한 문자, 통지서 발송, 추심활동 내역 입력 등 전반적인 업무를 수행했으며, 정규직원·파트장이 올린 글을 열람했던 정황과 방문시간·방문결과·비용 등을 입력했다. 또 피고로부터 이러한 사항을 철저히 준수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공지를 받았던 정황이나 매월 초 채권관리시스템에 그달의 업무목표량을 전화통화·방문·법 조치·입금 약속 같은 항목별로 등록한 후 상급자의 승인을 받았던 정황으로 볼 때 채권관리전산시스템 자체가 지휘·통제의 위력한 수단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채권관리시스템의 전산화는 정규직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을 뿐 아니라, 살인적인 업무통제 시스템으로 회자되고 있다. 대법원이 이러한 실질적인 업무통제 실상을 종속관계 판단의 근거로 인정한 것은 진일보한 것으로 이해된다.

3. 근로자성 인정하는 실질적 판단 지속돼야

금융산업에서는 사용종속관계하에서 업무통제를 받으면서 일하고 있지만 계약형태로 인해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유사근로자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보험설계사·채권추심원이 대표적이다. 채권추심원은 실질적으로는 신용정보회사의 업무통제를 받고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인건비를 절감하고 고용을 유연화하려는 사업체들의 다양한 시도는 같은 사업장에서 다양한 고용형태를 양산하고 있다. 더욱이 2008년 채권추심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 이후에는 위임계약 형태의 특수고용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위임계약이라는 명칭처럼 채권추심원의 근무형태가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실질적인 근무내용이나 방법이 변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전히 출퇴근에 제약을 받으며, 업무수행과 성과달성 과정에서 철저히 통제당하고 있다. 채권추심원의 퇴직금 소송이 이어지는 이유는 자신들이 근로자였고, 회사를 위해 기여했음을 퇴사 후에라도 보상받고 싶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적 혼란을 잠재우는 유일한 방법은 대법원이 현실에 기초해서 단호하고 일관성 있는 판결을 지속하는 것이다. 경제논리에 밀려서 실질적 사용종속관계를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는 오류는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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