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한다. 올해 10월부터 노동자 30명 이상 15개 공사·공단·출연기관이 비상임 근로자이사를 임명하는 방식으로 노동자 경영참가를 보장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0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기자설명회를 갖고 “근로자이사제는 노동자를 기업의 주인으로 초청하는 것”이라며 “노사가 경영성과와 책임을 공유하고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노사갈등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근로자이사 되면 노조 탈퇴=서울시는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상 노사협의회 설치기준을 준용해 ‘노동자 30인 이상 사업장’에 근로자이사를 두기로 했다.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서울시설공단·서울의료원·SH공사·세종문화회관·농수산식품공사·신용보증재단·서울산업진흥원·서울디자인재단·서울문화재단·시립교향악단·서울연구원·복지재단·여성가족재단 등 15곳이 도입 대상이다. 출자기관인 서울관광마케팅과 노동자 30인 미만인 장학재단·자원봉사센터·평생교육원은 제외됐다.

근로자이사는 해당 기관 직원으로 근무 중이기 때문에 비상임이사 자격으로 경영에 참가한다. 근로자이사는 비상임이사의 3분의 1 수준으로 임명된다. 노동자 300명 이상은 2명, 그 미만은 1명이다. 공개모집과 임원추천위원회 추천을 거쳐 임명하고, 세부자격은 기관별 특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의견을 수렴해 구체화한다.

근로자이사는 사업계획·예산·정관 개정·재산 처분 등 주요 사항에서 의결권을 행사한다. 노동현장에 대한 이해가 높은 만큼 기존 경영진과는 차별화된 목소리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임기는 3년, 무보수이며 이사회 회의참석수당 등 실비를 받는다. 권리 행사에 의한 책임도 따른다. 근로자이사가 뇌물을 받으면 공기업 임원과 동일하게 공무원에 준하는 형법을 적용받는다.

근로자이사가 되면 노동조합을 탈퇴해야 한다.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해 행동하는 자’가 노조에 가입할 경우 노조가 아닌 것으로 해석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이달 중 근로자이사 조례안을 입법예고하고 8월께 의회에 제출한다. 서울시는 10월께 제도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명순필 5678도시철도노조 위원장은 “비상임이사 3분의 1 수준으로 근로자이사가 임명되면 영향력 있는 의결권 행사는 어렵겠지만, 노사 간 경영정보 공유와 신뢰 형성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용자를 대표해 참석한 박현출 농수산식품공사 사장은 “근로자이사가 경영상황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면 나머지 직원들의 책임의식을 높이는 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노사가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확보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산별교섭으로 가는 징검다리 될까=서울시 근로자이사제에서 노동계가 주목할 대목은 또 있다. 독일이나 스웨덴처럼 노동자 경영참가 역사가 긴 나라는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산별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단체교섭을 기업 내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산별교섭이라는 형식을 통해 외부로 빼내는 것이다. 노사갈등을 예방하고, 노동자 경영참가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

반면 서울시 산하기관의 경우 개별(기업별) 교섭 관행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각 기관 노조들은 상급단체도 다르다. 상급단체를 통한 산별교섭이 불가능한 구조다.

하지만 새로운 실험은 가능하다. 해당 기관 노조들이 교섭권을 보유한 채 단일한 교섭테이블을 설계하는 방식을 검토해 볼 수 있다. 각 기관 노사와 서울시가 동의한다면 실현 가능한 교섭구조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집단교섭이 실현된다면 산별교섭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체계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실제 임금인상 가이드라인 등 정부 지침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공공기관 특성상 각 기관 노사의 이해관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집단교섭이 현실화하면 교섭비용 절감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편 재계는 서울시 근로자이사제 도입계획에 대해 “위험하고 무모한 실험을 즉각 철회하라”고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성명을 내고 “근로자이사제가 방만경영으로 적자를 거듭하는 공기업 개혁을 방해하고 생존마저 위협할 것”이라며 “제도가 도입되면 근로자이사와 경영진의 의견 대립으로 이사회가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되고 손해는 주주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