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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기민한 생산방식> 서평] 현대자동차가 잘나가는 이유가 뭘까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 저자)
박태주  |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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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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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 저자)

제 버릇 탓이겠지만 현대자동차의 생산방식을 밝히는 책을 노사관계론으로 읽는 것은 나의 한계다. 현대차 노사관계는 한국 노사관계의 상징이자 이단(아웃라이어)이며 그 자체로 모순의 결합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현대차노조(정확하게는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폐허'를 본다(이인휘, 『폐허를 보다』, 실천문학사).

실리에 젖어 연대를 잊은 노동운동은 덩치만큼이나 무거운 짐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을 여기까지 밀고 온 현대차노조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 비밀의 정원에 현대차 생산방식이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생산방식은 노동시장론이 놓쳐 온 지점이자 노사관계론이 미처 닿지 못한 영역이다. 이 영역을 고집스레 파고들어 생산방식은 물론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구조까지 밝혀낸 연구자가 울산대학교의 조형제 교수다.

조형제 교수가 자동차산업 생산방식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게 1992년이니 그것만으로도 연구경력이 25년을 헤아린다. 2001년에는 『대안적 생산체계와 노사관계』라는 책을 공저로 냈다면 2005년에는 현대차 생산방식을 독보적으로 해석한 『한국적 생산방식은 가능한가』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리고선 11년 만에 『현대자동차의 기민한 생산방식』(한울아카데미)을 내놓았다. 부제마저 “한국적 생산방식의 탐구”라고 붙여 생산방식에 대한 집착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현대차는 세계 최고의 관행(One Best Way)으로 알려진 린 생산방식과는 다른 한국적 생산방식을 구축해 또 하나의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라 일컬어지는 현대차의 성공은 미스터리에 속한다. 아직도 선두주자라고 하기엔 2%가 모자라는 기술수준이나 낮은 생산성과 대립적인 노사관계, 그리고 수직적이고 봉건적인 기업문화를 떠올린다면 현대차의 성공은 차라리 불가사의에 가깝다.

현대차의 한 임원은 회장이 미다스(Midas)의 손을 가진 탓에 하는 일마다 돈이 따라온다고 했다가 회장의 경영능력을 무시하는 거냐고 쫑코를 맞았다지만 운도 따랐다고 봐야 한다. 해외진출이 성공한 것도 그렇지만 현대차의 제일 큰 운은 한국이라는 재벌공화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사실이다. 조세와 금융지원은 기본인 데다 현대차 노동자의 낮은 생산성을 비정규직이 뒤를 받쳐 주고, 낮은 경쟁력은 불공정한 원·하청 관계와 독점적인 내수시장이 커버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적 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노사관계까지 개입해 회사 노무관리를 대신 떠맡기도 했다. 누구 말마따나 착취형 성장이 가능한 환경이야말로 현대차 성공의 숨은 주역이라는 것이다.

조형제 교수의 진단은 다르다. 현대차 성장의 비밀병기는 현대차가 한국의 역사적·제도적 조건에 맞춰 발전시킨 고유한 생산방식, 즉 기민한 생산방식이라는 것이다.

“기민한 생산방식이란 제품개발, 생산, 부품공급, 마케팅 등 가치사슬(value chain)의 전반에서 발휘되는 ‘기민함’이 경쟁우위의 핵심적 요소가 되는 생산방식이다.”(18쪽).

‘빨리빨리 문화의 체계화’라고 해도 좋겠다. 그것은 기민한 제품개발, 유연자동화와 숙련절약, 모듈형 부품업체 관계, 수요지향적 생산관리, 그리고 생산방식의 성공적인 해외이전 등으로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현장노동자의 숙련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작업조직이 단순화·표준화되면서 노동은 부차적인 요소로 바뀐 것이다. 숙련은 자동화·정보화로 대체됐으며 이를 주도하는 그룹은 엔지니어였다.

현대차가 숙련을 절약함으로써(즉 생산직 노동자의 숙련을 경시함으로써) 성공했다는 것은 역설이다. 역설은 대립적인 노사관계가 의도하지 않게 현대차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는 식으로 발전한다. 대립적인 노사관계는 숙련의 축적을 막은 것은 물론 유연화조차 방해함으로써 자동화와 정보화에 의존하는 기민한 생산방식을 낳은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1990년대 말을 기점으로 심화된 대립적 노사관계는 2000년대 이후 (…) 기민한 생산방식을 본격적으로 진전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30~31쪽).

대립적인 노사관계가 숙련절약적인 생산방식을 낳았다면 숙련절약은 이제 노동자 참여를 가로막는 기제로 작용한다. 게다가 자동화가 숙련절약을 넘어 노동력의 절약을 의미한다면 이제 현대차의 성공은 ‘고용불안을 내포한 성장’으로 현실화된다. 이는 “있을 때 벌자”라는 단기주의로 구체성을 획득한다. 현대차 노사관계가 대립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외되고 불안한 노동은 실리에서 보상을 찾고 그것이 파업이라는 컨베이어벨트를 거쳐 담합으로 발전한다. 노조의 높은 전투성과 회사의 높은 수익이 결합하면서 노사관계는 적대적인 공생관계로 굳어지는 것이다. 노조가 담합의 결과로 높은 임금을 챙기지만 기민한 생산방식을 매개로 스스로의 권력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은 지독한 역설에 속한다.

의문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총수의 “기민하고 과감한 의사결정”(38쪽)이 가지는 장점에 대한 일방적인 강조나 부품업체와의 관계가 위계가 아닌 네트워크형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지적(156쪽)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기민함의 핵심은 환경변화에 대한 재빠른 적응이겠지만 빠르다는 건 면도칼 같은 얇음을 특징으로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초체력을 확보하는 일은 바둑으로 치면 두터움에 해당한다. 친환경차를 포함한 새로운 제품기술, 노동자의 숙련, 노사관계, 부품업체 관계, 신뢰받는 브랜드 이미지 구축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이 갖는 장점의 하나는 기존 관념이나 지배적인 인식을 과감하게 부순다는 점이다. 자동차산업에 린 생산방식이라는 하나의 ‘최선의 관행’이 아니라 다양한 최선의 관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종합적이고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은 오롯이 조형제 교수의 연구 성과다.

더욱이 이 책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조 교수가 그것을 주장이 아니라 입증하고 있는 탓이다. 기존 연구 성과에 대한 비판적 접근과 철저한 자료 수집, 동학(同學)들과의 진지한 토론, 노사관계 당사자들에 대한 심층인터뷰, 그리고 현장에 대한 실사와 일차 자료의 분석 등 사례연구(case study)의 다양한 연구방법론을 교과서적으로 동원하고 있다.

글이 깔끔한 데다 도발적인 내용조차 가지런하게 정리하고 있다는 점도 평가할 수 있다. 전문용어를 풀어쓰려는 노력도 가독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터이다. 현대차를 통해 한국의 생산방식에 대한 해명을 한 단계 끌어올린 조형제 교수의 고집에 찬사를 보낸다.

이 책이 본격적으로 노사관계를 다룬 책은 아니지만 나는 이 책에서 현대차 노사관계의 모순을 읽는다. 생산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노사관계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 노사관계의 대안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필독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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