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훈 5678서울도시철도노조 승무본부장

지난달 10일 공황장애를 앓던 서울도시철도공사 기관사 김아무개씨가 목숨을 끊었다. 공사에서만 2003년 이후 아홉 번째 죽음이다. 기관사 사망을 막을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2012년 기관사 자살사고가 반복되자 지하철 최적근무위원회를 발족해 지하철 근무자 정신건강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권고안을 채택했다. 2014년에는 종합대책도 마련했다.

문제는 대책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5678서울도시철도노조 승무본부는 지난달 18일부터 서울시에 대책 이행을 위한 노정교섭을 촉구하며 시청역사 안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농성 15일차를 맞은 지난 2일 농성장에서 김태훈(46·사진) 승무본부장을 만났다.

- 서울시와 교섭은 어떻게 되고 있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도시철도공사에 기관사 사망사고 관련 기존 대책 재검토와 추가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지금 노정협의체를 구성하기에는 시기가 이르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대책은 이미 많이 나왔다. 심지어 서울시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냈다. 중요한 건 이행인데, 대책을 마련하라고 다시 지시하는 건 책임 떠넘기기다."

- 노조는 2인 승무제와 직급제 개선을 핵심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서울시 최적근무위원회 권고안에도 단계적 2인 승무제 도입과 조직문화 개선이 포함돼 있다. 1인 승무제는 노동강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억압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해 기관사들의 직무스트레스를 가중시킨 때문이다. 조직문화 개선의 핵심은 직급제 개선이다. 기관사는 업무도 책임도 똑같아 굳이 직급을 나눌 필요가 없다. 교사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직급을 9단계로 나누면서 체계도 복잡해지고 승진을 미끼로 한 실적경쟁, 상급자에 대한 충성경쟁이 발생했다. 성과평가와 연동되면서 노조탄압을 위한 불법적 노무관리도 벌어졌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그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 이게 직무스트레스를 악화시키고 병을 숨기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 기관사들이 트라우마로 인해 병을 숨긴다는 건가.

"공사는 2006~2007년에는 아예 병가를 못 쓰게 했다. 2008년에는 사실상 퇴출 프로그램인 5678서비스단을 만들어 업무부적응자들로 채웠다. 서비스단에는 공사에 반발하거나 노조활동에 적극적인 기관사들뿐 아니라 공황장애 유소견자들도 들어갔다. 그런데 이런 일을 자행한 관리자들은 처벌받기는커녕 승진해서 계속 기관사들과 마주친다. 그런 상황에서 기관사들이 자기 질병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업무강도만 놓고 보면 노선이 길고 혼잡률도 높은 7호선에서 문제가 가장 많아야 한다. 그런데 비교적 업무강도가 덜한 6호선 수색역에서 사고가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이 특히 과거 노조탄압이나 불법적 노무관리가 심했고, 그게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수색역은 공황장애 같은 정신질환 유소견자들을 서비스개선단으로 가장 많이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정확한 것은 역학조사를 해 봐야 알 것이다. 다만 지금은 서울시를 상대로 한 투쟁에 집중하는 것도 있고, 조사기관 선정·협의에 시간도 필요하다. 전문가와 상의해서 차근차근 추진할 계획이다."

- 지금도 공황장애 증세를 호소하는 기관사들이 있다고 들었다.

"사망사고가 있을 때마다 사실 현장의 동요가 크다. 지금도 치료 중인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 역시 영향을 받는다. 2014년 공사에 힐링센터를 설치해 이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상담·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본인 희망에 따라 승무업무에 복귀하거나 다른 업무로 전환배치하기도 한다. 다만 부서별 정원이 한정돼 있어 전환배치자들이 임시파견된 형태로 방치돼 있거나, 해당 부서에서 전환배치자를 반기지 않는 분위기가 있어 당사자들이 심적 압박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절차 때문에 전환배치에 시간이 걸리다 보니 긴급한 상황에는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열차 운전을 하지 않고도 기존 승무부서에서 치료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거의 없는 것도 문제다. 근본대책 이행이 필요한 이유다."

- 앞으로 계획은.

"농성은 서울시가 응답할 때까지 이어 갈 것이다. 지난달 29일 승무본부 조합원총회를 했는데 최근 10년 이래 가장 많은 조합원들이 참석했다. 그만큼 분노가 크고 관심이 높다는 얘기다. 이번만큼은 정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차원에서 서울시와 공사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소고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2인 승무를 법제화하고, 기관사 공황장애를 직업병으로 인정받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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