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덜그럭거리는 연장 가방 메고 아버지가 왔다. 술냄새가 폴폴, 오래 삭힌 홍어 냄새가 거기 섞였다. 취기에 비틀거리던 아버지가 새로 산 흰색 농구화를 밟을까 걱정했다. 유명 상표였는데, 어머니를 오래도록 졸라 얻어 낸 것이었다. 아래만 지켜보고 전전긍긍 섰는데, 아버지가 껴안고 얼굴을 비볐다. 정리 안 된 수염이 까칠해 나는 뒤로 내뺐다. 평소 무뚝뚝했던 아버지는 취하면 살가웠다. 얼른 씻으라고, 어머니 목소리가 버럭 높았다. 벗어 둔 신발 정리하는데 낡을 대로 낡은 아버지 신발엔 시멘트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발냄새가 지독했다. 오래전 내가 신던 운동화였다. 공사장에서 미장 일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고소작업대에서 떨어져 다쳤다. 뼈가 부스러진 탓에 병원 생활이 길었다. 밤마다 침대 곁을 지키는데 한쪽밖에 없던 아버지 신발에서 냄새가 솔솔 올라와 힘겨웠다. 산재 처리도 골칫거리였다. 신발 하나 튼튼한 걸로 새로 사시라고 괜히 타박했다. 미안하고 또 고맙다면서 꼭 잡아 주던 그 손이 거칠거칠 당신 신발처럼 늙고 낡았다. 언제나 무뚝뚝했던 아버지가 늙고 아파서야 내게 부쩍 살가웠다. 훌쩍 5월, 전화 넣어 발 치수를 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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