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진 매일노동뉴스 기획위원

며칠 전 캄보디아 한국 봉제업체인 ‘대광가멘트’가 400명이 넘는 직원들의 3월분과 4월에 일한 임금을 체불하고 야반도주(moonlight flit)했다는 외신 기사가 났다. 종종 이러한 사건은 사업주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도 알리지 않고 모든 설비를 남겨 둔 채 전격적으로 가족과 함께 도주해야 하는 상황이라 사업주의 절박한 재정적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내일 먹을 것이 없는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노동자도 인간으로서 존중되고 노동의 대가로 받은 임금(비록 최저임금이지만)으로 가족을 부양한다는 기본을 이 사업주가 조금이라도 생각해 봤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외신 기사를 대하면 한국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생각이 먼저 든다.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고 노동보호가 취약한 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에 투자를 늘리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터 욕설과 구타 그리고 임금체불 등으로 촉발된 현지 노동자들과의 갈등은 수없이 보고됐다. 지금은 비록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노동에 대한 이해가 약하거나 없는 한국의 기업가와 관리자에 대한 나쁜 이미지는 현지에서 부정적 국가 이미지로 연결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국제노동 분야에서 정부의 노동외교와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그리고 노동조합의 국제연대활동이 엇박자로 추진돼 왔다. 국가 이미지 개선을 위한 정부의 홍보 중심 노동외교는 대상과 목적이 지나치게 단기적이고 현안 타개(issue fighting)에 초점을 맞춰 왔다. 기업은 마케팅 전략의 일부로 이벤트성 사회공헌활동을 하다 보니 환경과 노동권까지 생각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 활동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면이 있다. 현지에서 노사갈등과 분규가 발생하면 연대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에 대해 정부와 기업이 섭섭한 마음을 갖는 것은 지나친 민족주의나 일국주의에 의존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민간노동외교는 궁극적으로 상대국의 노동단체와 노동자들의 ‘마음을 얻는 것(winning hearts and minds)’이 되기 때문에 우선 노동을 이해해야 한다. 단기적인 목적 달성과 효과에 조급해하지 않도록 전략적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선진국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부의 국고지원(ODA 포함)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통제(control)와 성과를 위한 지원이 아니라 개도국의 풀뿌리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노사가 함께 추구하는 민간노동외교는 노사 간의 신뢰와 존중 및 배려를 바탕으로 하는 사업이다. 우리나라의 노사관계가 신뢰와 상생의 발전적인 관계로 변화하지 않는 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사업인 것도 사실이다. 우리 모두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국내에서 갈등적인 노사관계는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2000년 초로 좀 오래된 이야기인데, 선진국 수출쿼터를 보장받기 위해 방글라데시 정부가 노동법을 개선하려 하자 앞장서 반대로비를 한 그룹이 한국 기업들이었다고 한다.

정부의 노동외교와 기업의 현지 경영활동 그리고 노동조합의 연대활동은 선진국의 경우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이 결국 큰 틀의 국가외교 발전과 다층외교 구조 구축에 기여한다.

우리나라도 노사정의 역할을 결합해 민간노동외교 효과를 높이기 위한 공동의 노력 끝에 1997년 국제노동재단을 설립했다. 그런데 2007년 우리나라 노동권에 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모니터링이 종료되는 시점과 묘하게 겹치면서 민간노동외교 필요성 증대에도 불구하고 재단은 조직적 측면이나 그 활동이 오히려 축소돼 왔다.

민간노동외교를 다시 점검해 봐야 할 필요성은 이웃 국가인 일본과 중국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일본은 일본노총 렌고(Rengo)가 주도해 운영하면서 외무성과 후생노동성이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일본국제노동재단이 30년 가까이 노동조합 개발협력사업을 하고 있다. 중국은 노총 격인 중화전국총공회가 국제적으로 후발주자임에도 남남협력(개도국 지원사업)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정부는 정부의 노동외교에 충실하자. 그리고 노사가 주도하는 민간노동외교 강화를 위해 노동환경 구축과 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말자.

우리나라도 이제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노동조합단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사용자단체인 한국경총 등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의 역할과 국제적 네트워킹이 크게 강화됐다. 이들은 우리나라 민간노동외교를 지탱할 중요한 인적자원이다. 이들이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국제적으로 지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정부와 기업 그리고 노동조합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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