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현장이 난리다. 선거가 끝난 지 불과 2주 만에 현장은 선거 이전보다 훨씬 혼란스럽다. 더구나 정부·여당이 선거에 패배했다는 평이 중론인 상황에서 당당히 벌어지고 있어 조합원들은 그야 말로 공황상태다. 선거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노동개혁은 계속 이어 가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이 실현되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이 시각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이 강행되고 있다.

일부 금융공기업에서 일어난 최근 사례를 간단히 소개한다. 회사가 나서서 조합원‘총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노동조합 위원장을 대신할 새로운 대표자까지 선출했다는 소문이다. 곧이어 성과연봉제를 주기로 하는 취업규칙안 동의를 얻었다고 한다. 종사자들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른 시일 내 이사회의 승인을 얻을 예정이란다.

회사의 이러한 행위는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위 사업장에는 근로자 과반으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다. 법률을 좇아 회사는 당연히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어야만 했다. 노동조합이 성과연봉제 도입에 찬성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회사는 불법을 택한 것이다.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근로기준법 제94조제2항 단서에서는 노동조합에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관한 ‘동의권’을 보장하고 있지 않는가.

이와 유사한 시도는 연일 계속될 것이다. 벌써 준비하고 있는 사업장도 적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앞서 소개한 사업장을 포함하여 위법한 방식을 동원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은 사법부의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사전적인 방비가 필요하다. 만약 성과연봉제 도입 결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조합원들은 사용자의 일방적인 요구에 절대 응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조합으로서는 조합원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노동조합만 믿고 단결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신뢰 말이다. “노동조합을 믿어 달라, 절대 개별적인 동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독려해야 한다.

참고로 노동조합을 배제한 탈법적인 ‘동의’절차도 엄격한 요건을 요구한다. 성과연봉제와 같은 불이익한 취업규칙의 변경을 위한 ‘동의’는 공개된 장소에서 종사자들에게 변경 취지를 분명하게 설명한 후 이들의 자유의사에 따른 집단적 ‘동의’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강요나 기망에 의하거나 종사자 개별에 의한 동의는 법률적으로 효력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나 답답하다. 이번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정부의 노동정책이 ‘심판’받았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기까지 하다. “이것으로 정부의 일방통행은 멈출 것이다”라는 기대가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지 않는가.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는 정부를 상대로 ‘심판’이라는 의미를 새길 짬마저 허락되지 않는 급박한 현실이다.

야당측 모 국회의원 당선자는 “현 상황을 대하는 노동조합이 더 적극적이어야 하지 않느냐”는 반문도 했다. 일리만 있는 말이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여 준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 당선자들을 모습 그 이상 어떤 ‘적극적’ 것을 찾는지 되묻고 싶다. 야당이 다수당이 됐고 아마 위 당선자도 그 덕을 톡톡히 봤을 게 분명하지 않는가.

이에 반해 선거 후 2주간 노동자·청년·시민으로부터 많은 표를 얻은 국회의원과 정당이 보여 준 모습은 실망 그 자체다. 빈말이라도 “지난 3년간 노동자들이 줄곧 반대해 온 정부의 반노동자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하는 이가 없다. 말은 고사하고 정부보다 앞서 “구조조정을 선도하겠다”고 한다. 많은 노동자들이 가슴을 치고 있다. 또 속은 것인가.

이제는 정치가 답을 해야 한다. 적어도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공약과 그 공약에 답한 노동자들의 응원으로 당선됐다면 그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 줄 때다. 시민과 노동자의 지지를 엎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정당이 앞장서야 한다. 성과연봉제 도입의 근거가 된 “양대 지침을 당장 폐기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정부의 일방적인 노동행정에 준엄한 책임을 묻겠다”는 말이라도 해야 한다. 국정조사라도 공언해야 한다.

“개원이 되지 않아 아직 국회의원이 아니다”라거나 “그동안 선거하느라 힘들었는데 개원까지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말 같지 않은 핑계는 듣고 싶지 않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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