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사람이 누군가와 같은 처지, 같은 편에 있다는 생각을 갖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것은 사회를 꾸려 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식적·실천적 기반이다. 인류가 현대 사회(modern society)로 이행하면서 발생한 사회적 문제들을 가지고 씨름한 여러 사상가 중 한 명인 에밀 뒤르켐은 연대(solidarity)가 사회지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함을 힘주어 강조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비로소 개인(individual)으로 존재하기 시작했고, 개인의 탄생은 개인과 분리된 사회를 실체화했다. 문제는 서로 다르고, 또 다르고자 하는 개인들끼리 어떻게 '우리는 같다'라는 의식을 필요로 하는 사회로 꾸려 갈 것인가 하는 사회질서(social order) 형성방식의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노사관계라고 하는 사회적 관계와 행위패턴의 꽃은 제도화된 집단적 교섭(collective bargaining)에 있다. 그것은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와 그것에 종속돼 노동력을 판매하는 자들 간에 일정 기간 동안 이뤄 낸 생산활동의 성과를 분배하고 생산 조건을 재구성하는 거대한 사회적 조율(coordination) 작업이며, 그 과정에서 거대한 사회적 소통의 향연(symphony)이 이뤄진다.

그러한 교섭의 단위(unit) 내지 수준(level)을 어떻게 꾸릴 것이냐의 문제는 어떠한 내용을 교섭의제화할 것이냐의 문제, 그리고 의제화된 교섭의 내용을 결국 어떠한 방향으로 부의 이동을 이뤄 내도록 결정할 것이냐의 문제와 더불어 매우 중요한 주제다. 교섭 수준의 결정은 교섭 주체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자기조직화돼 있느냐와 그것을 반영해 그것이 어떻게 제도화돼 있느냐에 따라 이뤄진다. 교섭의 조직화와 제도화는 달리 말하면 연대의 조직화와 제도화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200여만명의 조합원을 지니고 있는 독일 금속노조(IG Metall)는 1~2년에 한 번씩 금속부문 사용자단체(Gesamtmetall)와 단체교섭을 통해 금속산업 범주에 해당하는 영역의 다양한 일자리에서의 근로조건과 임금인상 수준을 결정한다. 금속부문의 업종별 교섭이 전개되는 동안 주요 시간대의 공영방송들은 그 전개양상을 관심 있게 보도한다. 보다 유리한 교섭 결과를 도모하기 위해 제도가 보호하는 틀 내에서 경고파업(Warnstreik)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사회적 소통의 향연이라고 위에서 언급한 모습의 전형성을 띤다. 이런 식으로 독일의 경제주체들은 사회질서를 형성하고 재생산해 나간다.

봄을 맞아 우리나라 노사관계 행위자들이 교섭의 장으로 발을 들이고 있다. 오랜만에 ‘공동교섭‘이라는 이름으로 자동차산업에서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실천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용형태 분화와 노사관계 불균등 속에서 산적한 노동시장 불평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서 노동조합이 혁신적인 자구책을 만들어 나가는 초보적 실천이다. 파괴된 노동연대의 복원을 위한 노력이라고도 보여지며, 자동차산업 위기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이라고도 보여진다. 잘되면 산업 구조조정이라는 발등의 불이 떨어진 다른 산업에서의 교섭과 고용대책을 위해서도 매우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줄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아직 연대의 향연(symphony of solidarity)과 조율의 기예(art of coordination)까지 기대하기는 당연히 이르다. 그래도 의미 있는 첫술이 아닐까 기대해 본다. 늘 강조했지만 노동시장 문제는 노사관계에서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이제는 노동연대가 사회연대로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의 핵심 의제를 해결하는 발전적이고 성숙한 사회 구성원들의 모습을 경험할 만한 시기가 됐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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