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조선산업에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그리고 현대중공업 모두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대규모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현대중공업이 전체 인력의 10%가 넘는 3천여명을 줄이겠다고 발표하는 등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의 해고’로 이어진다. 그러나 기업주들은 구속되거나 재산몰수 등의 처벌을 받는 일 없이 온갖 로비로 연명한다. 올해 8월 소위 ‘원샷법’이라고 부르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이 시행됨에 따라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지원은 오히려 활성화될 것이다. 부실기업에 세금은 왕창 들어가는데 노동자들은 쫓겨나 죽음에 이르고, 재벌의 부패와 독점은 심해지는 것이 지금까지 구조조정 양상이었다.

불안정성 시대, 저성장 시대에서 더 이상 "누군가 희생하면 경제가 나아지고, 그런 다음 희생한 것을 원상회복하면 된다"는 논리는 이제 의미가 없다. 1997년 경제위기나 2008년 경제위기에서 모두 희생당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 돼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데, 구조조정으로 독점이 강화된 재벌대기업들은 엄청난 사내유보금을 쌓아 두고 단기적 이윤창출과 하청업체들에 대한 수탈로 사회구조 불안정성을 악화시켰을 뿐이다.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은 그런 모순된 사회구조를 증폭시켜 왔다. 이번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동일한 양상으로 진행된다면 노동자들이 그런 구조조정을 수용해야 할 이유는 없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대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산업 위기상황에서 책임져야 할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정부와 기업 책임자다. 부실은폐 등 기업 책임자의 잘못이 발견되면 기업주와 임원들의 재산을 환수하고, 관리책임을 지닌 정부 책임자들을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이미 산업은행에 자율협정 신청을 한 한진해운의 경우 회장 일가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매매를 한 정황이 확인되는 등 책임회피가 심각하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여러 로비에 굴복해 부실대출을 해 주고도 여전히 책임을 지지 않는다. 기업 부실에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 한 단기이익만 노리는 기업 경영인들과 정부 기관의 무책임한 결탁은 계속될 것이다.

둘째, 노동자 총고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긴박한 경영상 이유라는 정리해고 요건을 법원에서 너무 넓게 인정하다 보니,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겨 ‘해고’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구조조정 방식이 됐다. 노동자 해고는 최후 수단이어야 하며 다양한 형태로 해고를 회피해야 한다. 여러 대책에도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가 불가피하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총고용에 대한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해양플랜트 부문의 경우 프로젝트가 마무리됨에 따라 사내하청 노동자가 올해만 2만~3만명 해고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시작됐다. 고용은 정부 의무다. 일하지 못하게 됐을 때 생계를 보장해야 하는 것도 정부 의무다.

셋째,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공적자금이 투여될 수밖에 없다면 그 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 경제위기 상황이 심화하면서 기업 이윤은 개인들이 취하고 손실은 사회로 떠넘기는 행태가 지속되지 않도록 하려면, 공적자금이 투여된 기업은 공기업 혹은 사회적기업으로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 당장 어렵다고 한다면 기업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통제방식을 제도화해야 한다. 기업 경영과 관련한 정보를 공개하고 이윤을 분배하는 과정에서도 사회적인 개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본격적으로 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논의해야 할 때다.

넷째, 이런 원칙이 관철되려면 구조조정 대응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주체적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기업 주체로서 문제 상황에 대해 모든 정보를 충분하게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하며, 대응의 전 과정에서 논의에 참여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특히 정규직들만이 아니라 비정규 노동자들,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구조조정은 채권단과 기업의 일이라고 주장하는 여당, 별도의 구조조정 TF를 구성하겠다는 야당 등 정치권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자’를 주요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 주체로서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응 주체가 돼야 한다. 물론 노동자 스스로가 조직하고 투쟁할 때 구조조정 과정에서 주체가 될 수 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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