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주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서울행정법원 2016.3.30 선고 2014구단2112 요양불승인처분취소 판결

1. 대상판결의 판단요지


회사는 2009년 1월 초께 원고가 같은해 1월14일 주주총회에 출석하는 것을 방해했다. 또한 원고가 위 주주총회에 출석한 이후인 2009년 2월2일 직무변경의 급박한 필요성이 없는데도 회사에서 약 20년간 사무직을 수행해 온 원고의 직무를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원고에게 생소한 기술 직무로 변경했다.

원고는 2009년 2월24일 전북대학교 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했다. 위 내원은 위 주주총회 출석 방해와 직무변경명령일로부터 모두 40일 이내에 이뤄졌는데, 의학적으로 적응장애 유발 요인이 발생한 때로부터 약 3개월 이내에 적응장애가 발현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원고는 위 내원 이전까지 정신질환으로 치료받은 바가 없다.

이러한 점에 비춰 보면 원고가 2009년 2월24일 위 병원에 내원하게 된 것은 업무와 무관한 개인적인 요인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위 주주총회 출석 방해와 직무변경명령으로 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회사는 2009년 2월2일자 직무변경명령 이후에도 2010년 1월15일자 인사평가, 2011년 6월30일 해고, 2013년 3월2일자 전보명령을 했다.

원고는 참가인 회사의 위 각 인사권 행사의 정당성을 다퉜고, 법원과 노동위원회에서 위 인사권 행사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한 법률적 쟁송은 각 2011년 7월14일과 2015년 6월24일, 2012년 11월12일과 2015년 5월14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종결됐다.

원고 주치의와 진료기록 감정의들은 원고가 참가인 회사의 위 인사권 행사로 인해 받은 업무상 스트레스가 적응장애의 발병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학적 소견 및 감정의견을 밝혔다.

원고의 진료기록상으로도 원고가 주치의에게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용이 상세히 기재돼 있다.

위와 같은 사정들을 모두 종합해 앞서 든 법리에 비춰 보면, 비록 원고에게 개인적으로 적응장애 발병에 취약한 소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원고의 개인적인 성격과 함께 회사의 위법한 수차례의 직무변경명령과 전보명령, 부정적인 인사평가, 그리고 이에 따른 법률적 쟁송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받은 업무상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원고에게 적응장애가 발생했다고 추인할 수 있다.

원고의 적응장애는 업무상 질병에 해당한다. 이와 달리 본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2. 업무상질병 판단 관련 판결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기 위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해 판시해 왔다.

“(1)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조제1호(2007.4.11. 법률 제8373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의 업무상재해라고 함은 근로자의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질병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이 경우 근로자의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해서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해야 하지만,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고,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돼야 하는 것은 아니며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입증이 됐다고 봐야 하고, 또한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질병이나 기존 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돼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도 그 입증이 된 경우에 포함되는 것이며, 업무와 질병과의 인과관계의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07.4.12 선고 2006두4912 판결 참조).”

적응장애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법원 판결이 있다. “회사의 위 원고들에 대한 CCTV 설치를 통한 감시와 통제 및 조합원들만의 별도 라인 배치 등을 통한 조합원들에 대한 차별 등의 수단과 방법, 그 기간, 그에 대한 조합원들의 이의 과정, 해고된 위 5명의 원고들의 구제신청 및 행정소송 과정 및 부당해고구제 이유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참작하면, 쟁의행위 종료 후에 있었던 소외 회사의 일련의 행위들로 인해 위 원고들이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했을 것으로 보이는바, 이와 같이 질병의 발생원인 중 일부가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노동쟁의 행위 중에 일어났더라도 노동쟁의 행위가 종료된 이후에 받은 업무상의 스트레스가 상당한 정도에 이르러 이 사건 상병의 발생 또는 악화에 상당한 정도로 기여했다면, 이 사건 상병은 위 원고들의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함이 상당하다(서울행정법원 2008.3.26 선고 2005구단11619판결).”

“원고가 비정규직 조리사로 근무하던 중 다른 조리사가 소속 학교로 발령을 받음에 따라 갑자기 해고를 당하게 됐고, 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결정에 따라 복직할 때까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이고, 복직 이후에도 해고 이전에 담당하던 업무를 담당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학교장 등 학교관계자나 영양사 및 다른 조리사 사이에서 갈등·긴장관계가 형성돼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이 사건 상병의 주요한 원인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밝혀져 있고, 해고 이후에 원고는 두통과 가슴 두근거림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한 점, 원고는 복직하기 하루 전에 두통으로 진료를 받았고, 복직한 직후에 소속 학교에서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아 집중적으로 두통과 급성 스트레스 반응, 자율신경 기능장애 등으로 치료를 받아 왔으며 이후에도 소속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같은 증상으로 치료를 받아 온 사실, 원고의 이 사건 상병이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했다는 여러 의학적 소견이 제시된 점, 원고가 소속 학교에서 해고되기 이전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거나 원고의 가족들에게 적응장애 등의 병력이 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 등을 종합할 때, 설령 원고에게 성격적 특성으로 인해 스트레스에 대한 취약성이 내재하고 있었더라도, 이러한 내재적 성격을 가진 원고가 소속 학교에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고, 복직한 이후에도 근무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이 사건 상병이 유발됐거나 자연적인 진행 경과 이상으로 악화됐다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이 사건 상병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광주고등법원 2011.9.22 선고 2011누531판결).”

3. 이 사건 판결의 의의와 과제

이 사건 판결은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가진다. 첫째, 회사가 원고의 상병을 개인적인 인격 때문으로 주장했으나 이것이 배척됐다는 것이다. 회사 자문의는 원고가 참가인회사를 상대로 시위를 하고, 수차례 소를 제기한 점에 비춰 공격적인 인격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원고에게 적응장애가 발생했더라도 그것은 업무상 사유로 인한 것이 아니라 원고의 개인적인 인격 때문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법원과 노동위원회가 회사의 인사권 행사가 위법하다고 판단했고 원고가 민원업무를 담당하면서 민원인과 사이에 별다른 마찰이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원고의 인격이 애당초 공격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원고가 참가인 회사를 상대로 시위를 하는 등의 사정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적응장애에 따른 현상으로 볼 여지도 있다고 봤다.

둘째, 수차례의 위법한 직무변경명령과 전보명령, 부정적인 인사평가, 그리고 이에 따른 법률적 쟁송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받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적응장애가 발생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매우 상식적인 판결인데도 근로복지공단이 원고의 요양신청을 불승인하고 법원의 지난한 소송과정을 거쳐서야 판단됐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도출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회사 내 업무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원인 조사와 그에 대한 법적 해결책 모색이 필요하다. 최근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현재의 법률로는 폭행의 정도에는 이르지 않는 형태의 직장내 괴롭힘(특히 사기업)에 대한 법적 규율이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업무상질병을 얻기 전에 그러한 원인이 될 수 있는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규율이 필요하다.

둘째, 사용자의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징벌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내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법원이 몇 년이 지나서 사용자의 징벌을 부당하다고 판결을 선고해 확정돼도 그 동안 노동자는 너무 큰 고통을 겪게 되는 반면 사용자는 그 동안의 임금을 주고 복직을 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사용자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노동자를 괴롭히기 위해 또 다시 부당한 징벌을 반복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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