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명선민주노총노동안전보건국장

4월28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13개 국가는 공식 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에 앞선 지난 21일 산재은폐를 확대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사업주의 산재보고 대상을 휴업 3일 이상에서 4일로 완화하고, 1개월 이내 미보고시 즉시 처벌하던 것을 노동부가 산재발생을 인지하고 시정지시 후 15일 이내 제출하면 처벌하지 않도록 완화하는 내용이다. 개정안이 도입되면 산재은폐 사업주는 적발이 되더라도 ‘산업재해조사표’를 내면 처벌을 피해 갈 수 있다. 산재은폐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산재은폐 사업장 명단 공표와 건설업 공사입찰에 반영된 산재은폐 감점제도 무력화된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그동안 산재은폐를 적발하던 다양한 경로는 사업주의 면죄부 처리 통로로 이용될 전망이다. 정부 통계의 13배에서 30배나 되는 산재은폐는 산재신청·건강보험 부당이득금 환수·119 신고·노동자 고발 등으로 적발돼 왔다.

그런데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제는 산재은폐로 적발돼도 해당 사업장이 노동부 통보에 따라 산재보고를 하면 처벌받지 않게 된다. 산재사망이 다발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최근 2~3년 새 6차에 걸친 산재은폐 고발이 있었던 사업장이다. 하청업체가 원청의 강요로 인한 산재은폐를 폭로하기도 했고, 지정병원이 산재노동자 진료기록을 없애는 방법도 동원되고 있다. 앞으로 개정안이 시행되면 노동자가 해고 위협을 무릅쓰고 산재은폐를 고발하면 노동부는 이 사실을 친절하게 사업주에게 통지할 수 있게 된다. 사업주가 15일 이내 산재보고를 하면 면죄부를 받는다.

산재은폐 감소를 위한 산재은폐 사업장 명단 공표와 건설업 공사입찰에 불이익을 주는 감점제도가 무력화되는 것도 문제다. 산재은폐가 만연한 건설업 산재은폐 감소대책으로 2006년 도입된 것이 산재은폐 시 공사에 감점을 주는 제도다. 종전 시정조치였던 산재은폐가 3~4년 전 '즉시 과태료' 처벌로 전환 반영돼 뒤늦게나마 제도시행 효과를 보려는 상황이다. 개정안대로 하면 대기업 건설사들은 현장에서 암암리에 진행하던 산재은폐를 대놓고 확대하면서도 공사입찰에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된다. 전 업종에 적용되는 산재은폐 다발 사업장 명단 공표도 휴지 조각이 된다.

하청·파견 노동자 산재은폐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노동부는 신규 혹은 소규모 사업장에 한해 개정안 내용을 제한적으로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믿음이 가지 않는 데다, 설령 제한적용을 하더라도 문제점이 크다. 현재 산재보험 가입은 파견업체가 하고 산재보고 의무는 사용사업주에게 있다. 파견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해도 노동부는 파견노동자의 사용사업주를 알아낼 방도가 없다. 불법파견이 횡행하면서 파견노동자의 고용기록조차 없는 사업장이 수두룩하다. 절대 다수 파견업체가 소규모 사업장인 상황에서 개정안이 적용되면 파견노동자 산제은폐는 확대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 가장 완화된 사업주 산재보고 기준을 가지게 되는 국가가 될 것이다. 노동부는 양대 노총의 반대에도 산재통계 기준을 지속적으로 변경 완화해 산재통계 줄이기에 급급해 왔다. 2014년 요양 4일이었던 산재보고를 휴업 3일로 바꾸면서 현장에서는 통원치료를 강요하거나, 근무기록을 조작하는 행태가 잇따르고 있다. OECD 가입국가의 상당수는 요양 1일을 산재보상통계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사업주 산재보고를 대상으로 하는 일본의 경우도 사업주 산재보고 기준은 휴업 1일이다. 산재은폐 천국 한국은 개정안에 따라 휴업 4일이라는 OECD 가입국가 중 가장 완화된 산재보고 기준을 갖게 되고, 사업주가 이를 위반해도 '시정조치'라는 면죄부를 준다.

올해 2~3월 발생한 메탄올 중독사고로 메탄올 위험성이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동부 감독을 피해 낮에는 에탄올, 밤에는 메탄올을 사용하는 사업주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현재 산재신청 과정에서 노동자는 사업주 확인을 받고 있고, 사업주 확인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복지공단이 사업주에 사실확인 통보를 하면서 산재보고제도를 안내하고 있다. 이중 삼중의 산재보고 제도 안내를 받고서도 오로지 “몰랐다”라고만 하면 산재은폐 처벌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개정안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무수한 이유를 대면서 산재은폐를 밥 먹듯이 하는 사업주와 하청·파견 노동자 산재은폐에서 면죄부를 받게 되는 원청 사업주들은 이번 개정안을 환영할 것이다. 정부는 산재은폐를 확대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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