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시적·선제적 구조조정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채권단을 통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기업구조조정을 압박하는 방식이다. 조선·해운사, 특히 규모가 큰 대형 조선사가 정을 맞게 됐다. 채권단 압박에 현대중공업이 구조조정 돌입을 선언했다. 노동계는 “정부와 기업이 추진하는 구조조정이 기업 체질개선보다는 노동조건 저하에 집중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10월까지 정부 주도 상시적 구조조정

정부는 26일 오전 임종룡 금융위원장 주재로 관계부처 차관과 부기관장이 참석한 가운데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를 개최했다. 경기민간업종과 부실징후기업, 공급과잉업종으로 나눠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부실징후기업이나 공급과잉업종은 자율적 조정쪽에 힘이 실렸지만 경기민간업종, 그중 조선과 해운은 정부 내 협의체에서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 채권단이 개별 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하게 된다. 빅3 조선사의 빅딜이나 합병 가능성은 일축했지만 인력구조조정 필요성을 언급하며 압박했다. 올해 4월부터 10월 사이에는 신용위험평가를 비롯한 기업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벌인다.

현대중공업 '임금삭감' 구조조정 첫 신호탄

올해 구조조정 시작 첫 신호탄은 현대중공업이 쏘아 올릴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등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 5곳 대표들은 이날 공동 담화문을 내고 "일감 확보를 위해 중국조선소와 경쟁하는 상황에 와 있지만 우리의 원가경쟁력으로 중국을 이길 수 있겠느냐"며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다음달 1일부터 휴일 연장근로를 폐지하고 6월1일부터는 고정 연장근로도 폐지할 방침을 세웠다. 이 같은 내용의 비상경영체제를 조만간 선포한다. 고정적으로 지급되던 임금을 회사 주도로 깎겠다는 것이다.

당초 알려졌던 3천명 구조조정 계획은 이날 담화문에는 담기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김정환 현대중공업 사장은 이날 오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10대 그룹 CEO 간담회에서 "3천명이라는 감원 인원을 정해 놓고 비상경영계획을 마련하는 것은 아니고 줄어든 일감에 맞춘 인력 조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과정 노조 참여해야"

노동계는 정부가 포문을 열고 현대중공업이 앞장서고 있는 모양새에 우려를 표명한다. 구조조정 목표가 기업체질 개선보다는 임금삭감·고용유연성 확보와 노조 약화를 노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현대중공업노조 관계자는 "올해 말 1천여명의 정년퇴직자가 발생하고 과장급 이상에 대해서는 상시적인 희망퇴직을 벌이고 있어 자연적으로 인원이 줄게 돼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구조조정 띄우기를 빌미 삼아 노조 동의 없이 임금을 깎고 쉬운 해고를 일상화하려는 회사의 속내가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도 관리직·생산직 관리자급인 비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저성과자 퇴직 압력이 이뤄지고 있는데 앞으로 비상경영이라는 이름 아래 더욱 일상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노조는 29일부터 1박2일간 서울에서 기자회견·시민선전전과 1인 시위를 통해 구조조정 반대 여론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구조조정 논의과정에 노조가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재벌 대기업에 부실경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상반기 3천252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2013년 3분기 이후 10분기 만에 흑자를 기록했다.

한편 채권단 관리를 받는 경남 중형조선소 노조들은 국고가 기업회생 대신 채권 이익 보전에 집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이날 오후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형조선소는 채권단이 요구한 구조조정을 이행하면서 노동자들이 엄청난 희생을 감내하고 있지만 여전히 회생하지 못하고 있다"며 "투입된 자금 대부분이 채무변제 등 채권단 이윤을 채우는 데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에는 금속노조 STX조선지회·성동조선해양지회가 참석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