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의원 총선 결과는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새누리당 당선자가 적어서 놀랐고,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많아서 놀랐고, 국민의당이 호남권 의석을 휩쓸어서 놀랐다. 여기까지는 제도권 언론이 한결같이 하고 있는 얘기다. 다만 거기에 진보정당들이 모두 패배 내지 참패했다는 사실을 더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면 이런 놀라운 결과의 성격과 원인은 무엇이고, 가져올 귀결과 노동운동에게 던져 주는 실천적 함의는 무엇일까.

첫째, 이런 예상 밖의 결과는 최상의 결과인가. 아니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최선이나 차선을 두고 선택하는 선거가 아니라 최악과 차악을 두고 선택한 선거였다. 국민 다수가 새누리당을 최악으로 판단, 심판한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을 차악이라고 평가, 선택한 것이다. 새누리당을 최악으로 심판한 데에는 막장공천 모습이나, 진정성 없는 사죄 퍼포먼스, 박근혜 대통령의 오만한 국회심판론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세월호 진상규명 거부와 노동악법 밀어붙이기, 재벌과 부동산 소유자만 돌보는 경제정책, 국가정보원의 정치도구화, 국사교과서 밀실 국정화, 일본군 위안부 문제 굴욕 처리, 대북 적대시 정책과 개성공단 철수 등 지난 3년간 집행돼 온 박근혜 정권의 통치 전반에 대한 심판이 그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지점에 대해 조·중·동은 물론이고 의외로 많은 의석을 얻은 야당들도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 그들도 자신들이 차선이 아니라 차악으로 당선됐다는 데 유의하면서, 차선이 되고자 분발하기보다 차악에서 이탈하지 않으려 몸을 사린다.

둘째, 이번 총선에서 ‘악들의 경주’가 이뤄진 원인은 무엇인가.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참다운 정치·최선의 정치가 제도권 안팎, 특히 제도권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구 아니면 보수밖에 선택지가 없도록 구조화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은 최악보다 차악을 선택하고, 차악 중에서 당선 가능한 차악을 선택한 것이다. 또 제도권에서 활동하는 진보정당들이 있지만 보수야당과 크게 다르지 않고, 최선이 아닌 차선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최선의 선택지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진보적 대중도 자신의 표가 무효화되는 차선을 선택하기보다 차라리 최악을 막는 차악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큰 틀에서 이렇지만 국민의당이 호남권에서 싹쓸이 압승을 한 원인은 약간 복잡하다.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보수선회 탓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김 대표 못지않게 보수적이므로 이 때문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오히려 수도권의 호남향우회 인사들이 현지에 내려가 국민의당 지지운동을 폈다는 설이 있는 것을 보면, 더불어민주당에서 친노파가 주도하면서 주변화된 호남 기득권층이 반발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또한 악들의 경주 중 하나다. 차악 중에서 보다 득이 되는 차악의 선택이었을 뿐이다.

셋째, 여소야대라는 총선 결과가 가져올 정치적 귀결은 무엇일까. 피상적으로 보면 천정배 의원이 주장하고 있듯이 청문회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밝히고 청산하는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여소야대는 야당들이 최선이거나 차선 정도는 됐던 1988년 총선 후의 여소야대 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시는 독재와 민주가 선과 악으로 확실하게 구별되고 전선이 형성돼 있었으므로 일정 정도 그런 청산작업이 가능했다. 물론 그것조차도 민의를 배반한 김영삼·김종필의 보수대연합 동참으로 유야무야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이번 여소야대는 제도정치를 3당 정립 체제로 만들고자 하는 지배계급의 의도에 맞게 흘러갈 것이다. 야당을 탈운동권화시켜 친자본화하고, 여당을 박근혜 사당에서 자본가계급 전체의 공당으로 바꿔 수구·보수대타협의 정치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쪽으로 이끌기 위해 수구언론들이 놀랍도록 열심이다. 국회 청문회 주장을 ‘혁명군’과 ‘완장’으로 매도하고 경제·민생 중심으로 수구와 보수가 협력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이에 부응해 임시국회 개회를 제안했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촉구했다. 새누리당도 야당과의 협치를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자본가계급은 수구·보수 대타협을 통해 무모·무도한 박근혜 일인독재가 불러올 민중혁명을 예방하면서 통치를 원활화하려 한다. 고로 ‘선거혁명’이라고 미화하는 이번 총선 결과는 정치의 총보수화, 수동혁명으로 귀결될 것이다.

넷째, 노동운동은 총선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별로다. 지지한 후보가 몇몇 당선됐지만 현실이 노동운동에 기대하는 바에 견주면 초라한 성적이다. 이번 총선은 실천적으로 두 가지를 확인시켜 줬다. 하나, 참다운 진보정치가 체계적으로 배제되는 제도정치판에서 노동운동이 운신할 여지가 크지 않다는 사실, 재야의 변혁정치투쟁이 필요불가결하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둘, 노동자도시 울산에서 전 통합진보당 후보가 둘이나 당선된 데에서 보듯이 노동운동이 노동계급의 사회적·민족적 요구에 부합하는 강령-고용·교육·의료·보육·노후·주거 보장, 6시간 노동·노동기본권 쟁취, 재벌·국정원 해체, 평화협정 체결·자주적 통일 지향 등-을 무기로 당파적으로 단결·투쟁한다면, 보수에 수렴되는 진보개혁이 아니라 그와 확연히 구별되는 진보변혁정치를 편다면, 제도정치 공간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거둘 가능성의 확인이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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