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4일 유성기업노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했다. 사업주가 노조를 설립해 운영을 주도했다는 이유였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유성기업노조는 자주성과 독립성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이른바 '어용노조'라고 규정된 셈이다.

그런데 법정에 섰던 유성기업노조 간부들이 새노조를 결성했다. 법원이 '노조설립 무효’라고 판정한 지 3일 만이다. 유성기업새노조는 19일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당초 “유성기업노조가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노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그만큼 유성기업노조 간부들이 급했던 모양이다. 조합원의 동요와 교섭권 상실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는 유성기업노조가 어용노조라고 자인하는 모양새다. 새노조라 하더라도 어용노조 핵심간부들이 만들었으니 태생적 한계도 그대로다. 어용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유성기업노조와 같은 어용노조는 2011년 7월 사업장 단위에서 복수노조가 허용된 후부터 부쩍 늘어났다. 새노조 결성을 주도하고, 기존 노조를 와해하는 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가 활개를 쳤다. 사업주가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다. 금속노조 소속 발레오만도·보쉬전장·유성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드물었다. 지난 1월12일 구속된 대구지역 한 택시업체 대표가 유일했다. 택시업체 대표는 자신의 지인을 입사시켜 어용노조를 만들게 하고, 기존 노조를 탄압한 혐의를 받았다. 노조 설립·운영에 개입하는 부당노동행위로 사업주가 구속된 것은 2008년 이후 8년 만이다. 복수노조 제도가 도입된 2011년 이후로는 처음이다. 최근 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가 더욱 교묘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노조를 설립해 기존 노조를 무력화하는 직접적 통제방식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수노조 허용 이후 기존 노조 조합원들이 물량이 적은 부서나 생산라인으로 전환배치 되는 방식이다.

이처럼 복수노조제도는 단결권 확대보다는 탄압의 대명사로 규정되고 있다. 시행 5년째이지만 복수노조제도의 순기능은 발휘되지 않고 있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감독부처인 노동부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노동부는 복수노조체제의 근간을 해치는 어용노조를 용인하지 말아야 한다. 사용자의 이익을 위해 특정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수단으로 전락한 어용노조 설립은 불허해야 한다. 노동부는 대구지역 택시업체 대표에게 들이댔던 잣대를 유성기업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이미 법원도 유성기업노조를 어용노조라고 판정했다. 이 노조의 설립 주체들이 새노조 결성을 주도했다면 어용노조의 변신에 불과하다. 노동부가 어용노조에게 합법의 날개를 달아 줄 이유가 없지 않는가. 아울러 법원이 유성기업노조를 무효라고 판결한 만큼 검찰은 불기소했던 유성기업 사건을 원점에서 재수사해야 한다.

숱한 어용시비를 몰고 온 복수노조제도도 손질해야 한다. 대표적인 문제조항은 바로 교섭창구 단일화 규정이다. 그간 복수노조제도 시행 후 교섭대표노조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노-노 간 다툼이 잦아졌다. 노조 간 조합원 규모를 둘러싼 이견이 발생해 노동위원회를 찾아가는 일도 다반사다. 유성기업처럼 사업주가 새노조를 만들어 교섭대표노조 선정에 개입한다. 주로 산별노조에 가입된 사업장에서 분쟁이 발생한다. 산별노조도 기업별노조와 같이 교섭창구 단일화 대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사업주들이 산별노조 와해를 위해 복수노조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수노조는 노동권을 빼앗기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면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는 손질해야 한다. 복수노조제도가 단결권 확대에 순기능을 하도록 개선해야 한다.

20대 국회가 이 일에 나서야 한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권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야권이 외치는 경제민주화나 공정경제는 노사 간 대등한 교섭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복수노조제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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