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불평등이 시대적 화두다. 평등하지 않다는 뜻의 이 불온한 말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것은 반가운 일이다. 최근 불평등을 다루는 거의 모든 논의는 소득 혹은 재산의 격차 같은 ‘경제적 불평등’에 집중돼 있다. 지금 한국 사회의 불평등 논의는 ‘경제민주화’라는 기호로 상징되는 경제담론이 주도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학계를 넘어 정당정치·관료행정·언론·사회운동·일상 언어의 영역까지 넓게 퍼져 있다.

정당들이 불평등을 완화하겠다며 경제민주화를 말한다면 그것 역시 소득격차를 줄이겠다는 뜻이다. 지난 총선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이끈 더불어민주당은 “문제는 경제다”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걸고 ‘더불어 성장’과 ‘경제민주화’를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 양극화를 해결하겠다는 정책공약을 내놓았다.

그런데 애초에 인간 공동체에서 경제적 격차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타깝지만 경제담론의 예시들에서는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불평등을 다루는 경제담론의 가장 근본적인 결함은 ‘왜 경제적 불평등이 문제인지’를 제대로 규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두가 알고 경험하고 있는 삶의 어려움을 경제 수치로 환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평등은 ‘평등하지 않음’을 뜻하므로 평등을 먼저 정의하지 않고서는 불평등을 말할 수 없다. 너무도 당연한 논리적 순서다. 그러나 경제담론은 ‘평등’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은 채, 곧바로 여러 종류의 경제적 격차를 불평등이라는 말로 손쉽게 표현한다.

여기서 ‘경제적 평등’이 문자 그대로 재화가 산술적으로 똑같이 분배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의 격차부터 ‘불평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경제적 격차를 얼마나 완화하면 ‘평등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애당초 경제적 격차를 해소해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담론 스스로는 이 모든 질문에 충분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향하는 ‘평등’이란 무엇인가. 그것에 기초를 둔다면 ‘무엇의 불평등’이 문제인가. 이에 대한 답은 총선 3일 후에 열린 세월호 2주기 추모행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4월16일 추모행사의 마지막 순서는 ‘헌법’과 ‘4·16 인권선언’ 조항을 참석자 모두가 함께 낭독하는 것이었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한 삶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라는 인간 공동체가 갖춰야 할 가장 기초적인 원리를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우리는 이 선언에서 ‘평등’의 의미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 인권선언이 제시하고 있는 평등이란 "모든 사람이 인간이라는 지위와 그것에 따른 모든 권리를 차별 없이 동등하게 누리는 상태"를 말한다. 무엇의 평등인가. 바로 ‘지위’와 ‘권리’의 평등이다. 세월호 참사와 지난 2년 동안의 상황은 ‘권리의 불평등’을 보여 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고 인간이 가진 ‘평등한 권리’는 국가라는 정치 공동체에서 시민이라는 ‘평등한 지위’를 통해 보장된다. 대한민국 헌법에 ‘국민’으로 대체돼 있는 ‘시민’은 여러 권리로 구성된 법적 지위를 뜻한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시민성(citizenship)이라는 개념에 의해 규정돼 왔다. 정치학자 벨라미는 시민성을 ‘권리들을 가질 권리(right to have the rights)’라고 말한다.

‘시민성’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는 결국 모든 구성원에게 시민이라는 지위와 그에 따른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국가는 시민의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지키고, 사회경제적 조건의 격차가 평등한 시민성의 실현을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사회정책 등의 수단을 통해 적극적인 의무를 다해야 한다.

2016년 총선과 세월호 2주기를 지나온 이 자리에서 다시 묻는다. 무엇의 평등이고 무엇의 불평등인가. 세월호 참사부터 최근 연이은 현대중공업 산재사망, 그리고 삼성반도체 백혈병 산재, 메탄올 산재실명, 서울메트로 안전관리 협력업체 산재사망, 경동택배 신입사원 산재사망, 가습기 살균제 피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 이르는 사건들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인간과 시민의 권리’로서 반드시 보장받아야 할 생명권과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도대체 한국 사회에서 민주공화국과 헌법의 존재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권리’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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