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보훈병원이 수익을 강조하면서 환자들의 불만이 치솟고 있어요. 환자 1명을 진료하는 시간도 이전보다 짧아졌습니다. 환자들은 성과에 집착하는 병원 시스템 때문인지 모르고 본인들 탓을 합니다. 국가유공자들은 늙고 아파서 그렇다며 미안해해요. 이게 보훈병원의 현실입니다.”

성과연봉제 확대를 요구하는 병원에 맞서 농성 중인 김석원(57·사진) 보건의료노조 보훈병원지부 지부장의 말이다. 김 지부장은 지난 8일부터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에 마련된 농성장에 상주하면서 전국 사업장 5곳의 성과연봉제 관련 투쟁을 챙기고 있다.

보훈병원 운영기관인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은 지난 2월 성과연봉제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 설명회를 열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직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공단은 임원(1급)과 실장(3급)까지 적용해 온 성과연봉제를 수간호사(4급)와 평간호사(5급)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보훈병원 직원 10명 중 7명이 성과평가를 통해 임금을 책정받게 되는 것이다. 김 지부장은 이달 15일 오후 중앙보훈병원 농성장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영리를 추구하는 병원의 경영행태에 우려를 표했다.

- 보훈병원의 성과연봉제 확대가 공공병원 역할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최근 보훈병원을 보면 공공병원인지 민간병원인지 모를 정도다. 환자가 몰리는 진료과에 하루 100명 이상 환자를 보라고 요구한다. ‘하루 5명 환자 더보기 운동’을 한 적도 있다. MRI·CT·초음파 검사 처방을 많이 내려 대기환자들도 많다.

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9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반년도 지나지 않아 성과연봉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공단은 오로지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잘 받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다.”

- 환자들이 보훈병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환자들 생각만 하면 안타깝다. 국가유공자들이 최고의 예우를 받는 병원이 바로 보훈병원이다. 환자들은 나라를 위해 희생했지만 대부분 가난한 데다 늙고 병들었다. 가족 사이에서도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보훈병원에 오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분들이다. 그분들을 최대한 예우하고, 최고의 서비스로 모시는 게 보훈병원 의료진의 역할이다. 적어도 보훈병원에서는 환자가 갑이고 의료진이 을이다.

하지만 병원측은 성과를 내기 위해 환자들을 더 많이 보라고 요구하고, 더 많은 검사를 받게 한다. 환자들은 병원 경영방침으로 불편함이 가중되는 건 모르고 자기가 병원에 와서 그런 줄 알고 미안해한다.”

-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 어떤 부작용이 예상되나.

“보훈병원 환자들 중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분들이 많다. 진료를 하기 위해 30분 이상 설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MRI 검사를 받을 때는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의료진 성과를 측정하기 시작하면 더 많은 환자를 보기 위해 환자에게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지 않나. 국가유공자들은 간호사들과 얘기하면서 속풀이를 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몸과 마음에 병을 얻은 사람들이다. 주사를 더 많이 놓은 간호사, 환자를 더 많이 본 간호사의 성과를 좋게 평가한다면 환자들을 어떻게 진심으로 돌볼 수 있겠나. 환자가 말을 걸어도 평가가 무서워 적당히 둘러대고 자리를 피하는 일이 생길까 우려스럽다.”

- 앞으로의 투쟁계획은.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노조가 있을 필요가 없다. 동료들끼리 경쟁하고 협업체계가 무너질 텐데 노조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나. 지부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도 내어 준 마당에 공단에 더 줄 것도 없다. 국가유공자들의 병원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투쟁할 생각이다. 김옥이 이사장 퇴진투쟁에도 나설 것이다.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고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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