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얼마 전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싶은 어느 노동자의 상담을 받았다. 국립대 조교로 일하는 A씨는 계약직 공무원 신분이다. 대학에서 상시적 행정업무를 담당하지만, 1년 단위로 근로계약서를 쓰며 4년이 되면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잘린다.

이 대학에는 공무원들이 가입한 초기업 단위노조 지부, 예전 기성회직이 중심인 기업단위노조 등이 활동하고 있다. A씨는 불안정한 고용과 차별적 노동조건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조에 가입하고자 했다.

현행법상 계약직 공무원 역시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적용대상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일단 공무원노조에 가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A씨가 문을 두드려 본 공무원노조들은 모두 난색을 표했다. 계약직 공무원을 조합원으로 받아 본 경우도, 노동자의 개별적 가입신청을 처리해 본 경험도 적었기 때문이다. A씨는 가능하다면 민주노총 소속 노조에 가입하고 싶었다. 총연맹과 민주노총 가맹 산별노조에도 문의해 봤다. 마찬가지로 총연맹이나 산별노조에 개별적 가입은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경찰직 같이 법적으로 노조 가입이 금지되는 직업도 여전히 남아 있고, 삼성 재벌처럼 어마어마한 폭력으로 노조 가입을 막는 부당노동행위도 여전히 극성스럽다. 사용자뿐만 아니라 정부·법원이 나서 노동자가 아니라며 노조 가입을 방해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외적 제약 외에도 노조조직 자체의 한계성도 존재한다. 법원이 불법파견 노동자라고, 즉 원청의 근로자라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내하청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원청 노조, 동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 신청을 수개월째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하청 노조, 집단해고를 앞둔 용역노동자들의 가입 신청서를 앞에 두고 고심하는 초기업 단위노조, 하청 노동자들의 집단적 가입 신청과 이에 상반되는 원청 노조의 압박을 받고 있는 산별노조, 조합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까 봐 신규조직화에 소극적인 노조 등 곳곳에서 노조 문턱이 상상외로 높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물론 기존 노조의 어려움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노조 가입을 희망하는 노동자들이 그동안 힘든 투쟁의 성과에 그저 편승하려는 태도를 가질 수도 있고, 새로운 조합원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기에 현재 노조의 역량이 너무나 부족할 수도 있다. 더구나 새로운 조합원들을 받아들이면 사용자와의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면, 노조로서는 많은 것을 걸어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주변의 보다 많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노력을 멈췄을 때, 노동조합은 결정적으로 약화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 준다. 법·제도적 뒷받침을 받던 노조도, 친노동자 정당과의 제휴가 강했던 노조도, 노사협조주의를 통해 사용자 인정을 추구했던 노조도, 조합원의 실리 추구에 충실하고자 했던 노조도 20세기 말부터 전 세계적 약화를 경험하고 있는 배경에는 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극복하지 못한 노조운동의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노조운동의 조직적 전망으로 산별노조 건설과 전략조직화가 논의된 지 20년이 넘어간다. 그러나 아직도 노조의 내부적 경계선은 단결 확대에 장벽이 되고 있다. 대산별노조와 산별교섭 제도화를 전망으로 추진하는 동지들에게는 상당히 엉뚱한 제안일 수도 있겠지만, 총연맹이나 산별노조·연맹 산하에 노동자들의 개별 가입이 가능한 조직을 만드는 실험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당장 단체교섭을 할 수는 없더라도 신규조합원에 대한 상담·교육, 조합활동의 인큐베이터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자원을 투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가뜩이나 부족한 노조의 자원을 전망이 불투명한 일에 낭비하는 것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20년의 노력에서 가장 미약한 지점으로 평가되고 있는 조직문화 혁신을 시작하는 실제적 방안이 될 수도 있다. 일단 노동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분할을 극복하는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