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87년 이후 이렇게 드라마틱한 경우는 드믈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두고 어느 학자가 한 말씀이다. 아마 선거 개표 당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설마”를 넘어 “이럴 리가”까지, 곳곳에서 다양한 탄성이 나왔다.

총선 결과를 두고 여러 평이 이어지고 있다.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모든 것을 뒤집어 놓은 쓰나미라고 하거나 구체제(앙시앵레짐)를 무너뜨린 프랑스혁명에 빗대기도 한다. 그만큼 ‘기대하지 못했던’ 그리고 ‘너무나 큰’ 정치사회 변화가 유권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혁명”이라는 평에 기꺼이 한 표를 던진다. 그야말로 21세기 현대에서 가능한 유일한 혁명 수단이 선거라는 데 이견이 없다는 전제에서 본다면 “혁명”이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다.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발 빠르게 정권이 바뀐 역사적 사실을 무마하려 애쓰고 있다. 쉬 넘어가서는 안 된다.

평범한 시민과 노동자들 입장에서 평가해 보자. 정확한 표현은 이들이 만든 혁명이다. 정부가 ‘개혁’이라는 이름표를 달아 벼랑으로 내몰았던 이들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에서 노동개혁에 이르기까지 지난 3년간 정부는 시민과 노동자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지 않았나. 어찌 공무원과 노동자가 개혁 대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노동공약을 보자. 국회의원을 배출한 4개 정당이 내놓은 노동공약도 나쁘지 않다. 그저 매번 보던 일자리공약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수는 적지만 의미 있는 공약이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야당을 중심으로 최저임금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여당도 이에 가세했기 때문이다. 수년 내 9천원까지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똑똑히 기억한다.

더구나 새누리당 대표는 유세 중 조선업계 등에서 강제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사실상 그동안 정부·여당의 노동정책을 바꾸겠다는 공약이었다. 바라건대 선거에 패했다고 스스로 다짐한 공약마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보면 볼수록 이번 결과는 아쉬움이 많다. 특히 조직된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다수 노동자들이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표를 던졌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조직된 노동자들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당선자가 많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노동자정당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없다는 평가가 많다. 가장 근접하다고 할 제4당에서도 노동자 후보는 후순위였다. 무소속이지만 울산지역이나 제1야당에서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수 명의 노동자 당선자가 나온 것에 위안을 삼을 따름이다.

이러한 결과 때문일까. 선거가 끝났지만 노동자들의 희망과는 다른 방향으로 노동법 얘기가 이어지고 있다. 어느 당은 일부 수정을 전제로 노동 4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고 한다. 사실상 그동안 여당이 보여 온 태도와 같다. 대통령과 정부는 아예 선거결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개혁을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뜻을 총선 이후 수차례 밝혔다.

그래서 “이번 선거 결과가 이미 예고된 정부와 기업의 계획에 맞설 대안이 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해 본다.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만큼 지켜 낸 것만도 커다란 성과임은 부정하지 않지만 여기에 만족하면 더 크게 퇴보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누구는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정부가 바뀌어도 노동정책은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라고도 말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실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냉정한 분석이 먼저다. 그리고 대안을 세우고 집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예비노동자들인 청년들이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갈랐다고 한다. 의회를 바꾼 주체는 청년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을 대접해 줘야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청년노동자들을 위한 진짜 정책을 곧장 시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리해고를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은 곧 닥칠 사건이다. 부당하고 위법한 정리해고는 당연히 막아야 한다. 그동안 이 부분에 집중했다. 그러나 만약 적법한 정리해고가 시행된다면 그 대안이 있던가. 지금 준비해도 늦지 않다.

어제가 마침 4·19 혁명일이었다. 어느 학자는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1세대가 일군 근대사 최초의 혁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곧장 5·16 쿠데타라는 반동이 일어났다. 지난주 선거혁명의 중심에 우리사회 청년들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들이 좌절하지 않고 머지않아 결실이 맺어졌으면 하는 소망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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