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6월에 열린 노사발전재단 출범식. 재단은 출범 당시부터 노사 주도 민간기구라는 당초 취지를 살리는 데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고용노동부 하청업체.”

“노동부 퇴직관료 일자리 만들기.”

노동계 관계자들이 노동부 산하기관인 노사발전재단을 평가할 때 곧잘 쓰는 말이다. 재단이 정부 보조금을 받는 사업이나 정부에서 위탁받은 사업을 시행하는 기관으로 변질된 것을 지적한 표현이다.

노동부 산하기관이 노동부 사업을 위탁받아 시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재단 설립취지가 그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출발부터 어그러진 계획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옛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발전재단 설립에 합의한 때는 2006년 11월30일이다. 당시 노사정은 ‘노사관계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노사 주도의 정책사업 추진 기본합의문’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재단법인 한국국제노동재단을 확대·개편하는 방식으로 이듬해인 2007년 2월 노사발전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사가 자율적으로 출연금을 내고 정부가 매년 사업비와 운영경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가 지원금을 투입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노사 주도로 △인적자원개발 사업 △중소기업·비정규 노동자 등 취약계층 지원 △노사공동교육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에 대한 조사·연구 △국제노동교류를 하자는 게 재단 설립취지였다.

재단은 계획보다 2개월 늦은 2007년 4월 공식 출범했다. 노사정 합의안은 껍데기만 남은 뒤였다. 당초 노사정은 정부와 재계가 각각 500억원을 출자하고 한국노총은 경기도 여주 중앙교육원을 현물출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이 방안이 흐지부지됐다. 조직운영에서 생명과도 같은 돈과 사람을 확보하지 못한 셈이다. 결국 재단은 출범할 때부터 ‘노사 주도 민간기구’가 아닌 노동부의 국고보조사업과 위탁사업으로 연명하는 전형적인 정부 산하기관의 길로 들어섰다.

"고용보험 지원→노사정 출자→정부 쥐꼬리 지원"

노사공동 사업기구 ‘껍데기만 남아’


노사발전재단은 한국노총이 참여정부 시절부터 재계와 노동부, 청와대를 접촉하면서 어렵사리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한국노총은 바세나르 협약을 이끌어 낸 네덜란드와 유사한 중앙노사관계 모델 구축을 추진했다.

4·13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용득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은 김대환·이상수 노동부 장관, 이수영 한국경총 회장에게 네덜란드 노동재단 같은 기구 구성을 타진했다. 청와대까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한국노총과 경총의 재단설립 추진은 탄력을 받았다.

2006년 11월 노사정 합의에서는 노사단체 출자와 정부지원금을 통해 재단을 운영하기로 했다. 사실 이 방안도 원래 구상보다 후퇴한 것이다.

한국노총과 경총이 2006년 재단 설립에 합의하면서 생각했던 재원은 고용보험기금이었다. 노사는 “노사가 내는 고용보험을 통해 그 주인인 노사가 노동시장 문제 해결에 주도적으로 나서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재단 설립취지를 살리는 주요 방안이 고용보험기금 활용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해당 방안은 노동부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정부가 수조원에 달하는 고용보험기금 운영권을 노사단체에 넘겨줄 리 만무했다. 노동부는 '고용보험기금 출연'이 아닌 '노사정 3자 출자'를 강하게 주장했다. 고용보험기금으로 재단을 운영하려던 노사의 계획은 끝내 물거품이 됐다.

대신 노동부 주장대로 노사정이 각각 출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 출자는 나중에 '운영경비 지원'으로 바뀌었다. 노사는 노사대로 출자를 위한 내부 설득에 실패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는 자서전 <노동은 밥이다>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이상수 장관도 결국 관료들을 이기지 못하고 공동출자 방식을 주장했다. (중략) 노동부 출연금마저도 기획예산처의 반대라는 명분으로 흐지부지됐다. 자칫 잘못하면 고용보험이라는 노다지 밥그릇을 빼길 수 있다는 관료들의 우려 때문에 내가 주장하는 민간주도형 기구는 사실상 백지화됐다.”

'재원부족→위탁사업→인력구조 기형화' 악순환

재원을 확보하지 못한 노사발전재단은 노동부 위탁사업으로 수익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올해 재단 예산은 434억5천400만원이다. 이 중 정부지원금은 85억6천만원으로 전체 예산의 19.7%에 불과하다. 전년보다 55억7천만원 줄었다. 정부지원금은 재단 본연의 사업으로 볼 수 있는 △노사상생협력 교육사업 △국제노동교류 △노사 파트너십 프로그램 지원 △차별 없는 일터 지원사업 등에 사용된다.

나머지 예산은 모두 장년나침반 사업이나 시간제 일자리 창출 지원사업, 중소기업 고용구조 개선사업 같은 정부·지자체 위탁사업에서 충당한다.

위탁사업 증가는 재단의 기형적인 인력구조로 이어졌다. 재정이 부족하다 보니 정부 위탁사업을 받아 수익을 만들고, 위탁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정원외 인력이 급증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재단 정원(정규직)은 155명인데, 무기계약직과 비정규직 등 정원외 인력은 116.5명이나 된다. 2010년에는 정원 20명에 정원외 인력 76명이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5년 예산을 검토한 보고서에서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예산정책처는 “노사발전재단은 직제상 정원에 비해 정원외 인력이 너무 많아 조직구조가 다소 기형적이라 할 수 있고, 이런 조직구조와 인력상황이 고착화될 경우 조직과 구성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정원외 인력 채용을 지양하고, 기간제나 무기계약직의 정규직화를 주문했다.

재단은 2014년부터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대거 전환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무기계약직 40여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하지만 재단이 정부 위탁사업에 의존하는 한 고용불안이나 기형적인 인력구조를 해소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재단 장악한 노동부 퇴직관료들

노동계 반대사업까지 진행


정부 보조금과 위탁사업에 의존하다 보니 노동부 퇴직관료가 자연스럽게 조직을 장악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2007년 4월 재단이 출범한 뒤 올해까지 만 9년간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사무총장은 모두 노동부 퇴직관료였다. 엄현택 현 사무총장을 비롯해 안영수·김용달·문형남 전 총장은 모두 노동부 고위공무원 출신이다.

사업내용부터 인적구성에 이르기까지 노동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만큼 노사가 자율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들었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이 불거졌다. “재단 설립취지에 부합하게 정부 비중은 다소 줄이고 노사 역할을 강화하라”는 주문이 나왔다. 재단은 “노사와 협의해 역할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노사가 피부로 느낄 만한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재단 관계자는 “중앙단위 노사 대화는 노사정위가 있기 때문에 지역 차원의 노사 파트너십 향상을 위해 노사상생본부와 지역협력팀을 신설하고, 노사미래포럼 구성과 노사상생기금 형성을 추진해 왔다”며 “가시적인 성과는 없지만 진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재단이 올해부터 노동부 2대 지침 현장정착을 위한 지원사업에 나서면서 노동계와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지고 있다. 한국노총은 "2대 지침 관련 재단 사업에 참여하지 말라"는 내용의 공문을 산하조직에 내려보냈다. 재단 공동이사장을 맡고 있는 조직에서 재단 사업을 보이콧하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동계가 반대하는 각종 정부사업을 하청 받아 시행하는 재단에 무슨 기대를 하겠느냐”며 “재단을 대폭 바꾸기 위한 논의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4월이면 노사발전재단 설립 10년이 된다. 재단이 지난 10년의 과정을 어떻게 평가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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