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총이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이나 일반해고제를 시행하면서 희망퇴직·정리해고 같은 기존 해고를 병행하면 효과가 높다는 지침을 회원기업에 내려보냈다. 취업규칙을 개정할 경우에는 노조 합의가 없더라도 개정을 강행하라고 권했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노동자를 저성과자로 선정해 차별하는 관행이 굳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취업규칙 개정을 둘러싼 노사갈등이 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희망퇴직 거부하면 저성과자’ 관행 되나

경총은 17일 ‘양대 지침 관련 경영계 가이드북’을 발표했다. 경총 관계자는 “올해 1월 노동부가 발표한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의 주요 내용을 기업들이 반영해 산업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라고 밝혔다.

경총은 가이드북에서 양대 지침 주요 내용을 소개한 뒤 대응지침을 별도로 정리했다. 경총은 대응지침에서 “공정인사 지침의 목적은 저성과자를 쉽게 해고하려는 것이 아니라 직무능력과 성과중심의 인력운영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해고·퇴직 조치들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므로 징계해고·경영상해고·희망퇴직 등 해고·퇴직 관련 조치들은 과거와 동일하게 적용하라”고 덧붙였다.

KT와 두산모트롤을 비롯해 적지 않은 기업들이 희망퇴직을 거부한 노동자들을 저성과자로 분류해 '면벽수행'을 시키거나 기존 업무와 무관한 곳으로 전환배치해 논란이 됐다. 경총 지침은 인권침해 논란에 휩싸인 기업들의 이 같은 관행을 고착화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인사 지침이 쉬운 해고를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경총이 지침에서 “공정인사 제도는 퇴직 프로그램과 병행해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밝힌 것도 정부 양대 지침을 바라보는 재계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경총은 인사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이나 배치전환·전보시 동의 또는 합의를 주장하는 노조 요구를 거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취업규칙 개정, 단체교섭에서 다루지 말라”

경총이 제시한 '취업규칙 지침 활용법'은 취업규칙 개정 안건이 단체교섭에서 논의되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단협교섭을 하면서 취업규칙 개정에 발목을 잡히거나, 단협을 이유로 노조가 쟁의행위를 하는 것을 막자는 속내다.

경총은 노조가 없거나 노동자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한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단체협약에 ‘취업규칙 제·개정시 노조 동의 요건’을 명시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노조가 취업규칙 개정에 반대하거나 고율의 임금인상을 조건으로 취업규칙 개정에 동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경총은 특히 “반수에 미달하는 노조가 있는 기업이 단협에 취업규칙 개정 등을 통한 근로조건 저하금지 조항을 규정하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노조 동의가 절차적 요건으로 인정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자 과반수를 차지한 노조가 있는 사업장과 관련해서는 노조가 취업규칙 개정 반대를 위해 파업할 경우 엄정대응을 하라고 요구했다. 경총은 “취업규칙 변경을 이유로 한 파업은 불법”이라며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적용하고 민·형사상 소송을 하라고 제시했다.

한편 한국노총은 최근 각 사업장에 지침을 보내 사용자가 정부의 2대 지침 적용을 위해 단협과 취업규칙 개정을 요구할 경우 즉시 상급단체에 보고해 지원을 받도록 했다. 민주노총은 사측이 일반해고제나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단협에 ‘업무능력을 이유로 한 해고 금지’ 조항을 넣도록 했다. 취업규칙 변경시 노조와의 합의조항도 명시하도록 했다. 일반 국민에게는 구속력이 없는, 법률도 아닌 행정규칙에 불과한 2대 지침 탓에 노동계와 경영계가 전면전으로 치닫는 '비정상적인 노사갈등'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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