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부진에 따른 자책감에 시달리다 우울증이 악화돼 자살한 경우 업무상재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이진만)는 A씨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지 않은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20년간 한 회사에서 일한 A씨는 2012년 신설된 지부로 발령을 받았다. A씨는 처음 해 보는 업무를 맡아 팀장이 됐다. 팀원들도 해당 업무에 배치된 지 1년이 안 된 상태였다. 팀원 전체가 업무에 미숙하다 보니 거래처와의 업무에 차질이 빚어졌다. 해당 팀은 결국 회사가 정한 연간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다.

A씨는 동료와 후배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거나, 아내에게 “회사에서 큰 잘못을 저질러 부서원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됐다”고 자책했다. 새벽에 집에서 혼자 우는 일도 잦아졌다. A씨 아내는 남편의 우울증이 심각하다고 보고 지부장에게 다른 곳으로 전보 발령을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뒤로 상황은 꼬여만 갔다. A씨가 담당한 업체와의 거래에 혼선이 생기는가 하면, 또 다른 거래업체가 공장을 폐쇄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A씨 우울증은 극도로 악화됐다. 그는 결국 새 업무를 부여받은 지 1년4개월 만에 자택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

고인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이 업무상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한 것이므로 업무상재해로 인정해 달라”며 공단에 유족급여·장의비 지급을 신청했다. 공단은 그러나 “개인적인 취약성에 의해 자살에 이르게 됐으므로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법원은 고인과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평소 꼼꼼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의 A씨가 경험이 없는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중압감과 불안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며 “자살 선택의 동기가 될 만한 다른 사유가 나타나지 않은 사정들을 참작해 보면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으로 우울증이 악화돼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고, 이는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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