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호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서월동지(西月東指). 달은 서쪽으로 이동했는데 손가락은 동쪽을 가리킨다. 지고전부(指固淟腐). 손가락이 굳어 때가 끼고 썩는다. 실지북지(失志北指). 방향 잃은 손가락이 북쪽을 가리킨다. 완월소지(宛月消指). 달은 뚜렷한데 손가락은 사라진다.


뚱딴지같이 한자성어로 시작했다. 지난해 어느 날이었다. 세대와 계급계층과 자연생태를 가릴 것 없이 차별경쟁의 늪에서 아우성치는데, 투쟁은 형편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도대체 이놈의 사회를 어떻게 해야 되나 암울했다. 끙끙거려 봤지만, 늘 그렇듯 결론은 똑같았다. 운동이 잘하는 수밖에 달리 무슨 수가 있겠나. 운동! 운동? 가슴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견지망월(見指忘月)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달을 보라고 가리켰더니 달은 바라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는 뜻이다. 본질은 외면하고 방법론만 왈가왈부하는 현상을 비유한 표현이다. 우리 운동의 과거가 그랬고 현재도 여전했다. 모든 운동이 똘똘 뭉쳐도 시원찮은 판인데, 도토리 키 재기 하면서 내가 옳다 네가 그르다 하면서 힘을 합치지 못했다. 물론 힘 모을라치면 '똥탕' 튀기며 방해하는 이상한 집단도 있기는 했다.

한데 곰곰 생각하니 운동은 견지망월보다 훨씬 뒤처진 상태였다. 견지망월의 손가락은 달의 방향은 정확히 가리켰다. 우리 운동은 손가락의 방향 자체가 잘못돼 있었다. 민중운동, 특히 노동운동이 심했다. 한자성어가 만들어졌다.

운동은 밑바닥 삶에서 멀어졌다. 노동자 간 임금격차는 5배도 모자라 10배를 향해 벌어지면서 도저히 한 계급이라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숱한 영세상인은 웬만한 비정규직보다 못한 처지로 전락했다. 실업과 비정규직의 늪에 빠진 청년은 7포에 '헬조선'을 부르짖었다. 그래도 운동은 임금전략과 고용전략과 사회전략에 힘쓰지 않았다. 재벌이 대를 세습하며 천하를 삼키는데, 재벌이 인간뿐만 아니라 생태계 파괴까지 막후에서 조종하는데, 또 운동의 핵심은 총자본에 맞서는 건데, 총자본의 실체인 재벌전선을 치지 못했다. 5년 임기 정부를 국가라 착각하고 대통령에만 멈춰 있었다. 권력을 찬탈한 군인이 총칼 앞세워 국가 수준의 위세를 떨치던 시대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재미가 진정성인데, 집회는 틀에 박혔다. 시민에게 동참하고픈 마음을 주지 못할뿐더러, 구경해도 뭔 소린지 알아먹을 수 없는 말을 마구 쏟아 낸다. 참가대오도 재미없고 연설자 스스로도 재미없는 집회인데, 더 말해서 뭐하나.

민주노총은 지속적으로 총파업을 결의했다. 그런데 실행할 주력 조합원은 꿈쩍도 않는다. 그들의 삶이 최하층 공돌이에서 평균연봉 1억원 안팎의 처지로 향상된 연유다. 쇠사슬밖에 잃을 게 없는 무산계급에서 이 체제를 통해 지킬 게 더 많은 처지로 바뀌었다. 그들에게 즉자적 방식으로 총파업을 주문해선 씨알머리도 안 먹힌다는 걸 누차 확인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상황의 당위에 쫓겨 총파업을 결의한다.

민주노총은 대기업·공공기관·정규직으로 상징화됐다. 억울한데, 반론하기 만만찮은 난제다. 민주노총 조합원 평균임금은 전체 노동자의 상위에 속했다. 민심이 어떤지 우리는 차갑게 경험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을 할 때였다. 유명 연예인까지 나서고 진보언론이 호응하며 많은 이가 희망버스를 탔다. 하지만 정작 영도주민의 반응은 싸늘했고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쌍용자동차 투쟁에서도 평택시민의 반응이 그랬다. 벌 만큼 벌며 살지 않았냐고 했다. 부산에서도 가난하기로 손꼽히는 영도주민과 수도권 변방 평택시민은 운동의 토대가 돼야 할 이들인데, 등을 돌리고 있었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처지와 자신의 처지에서 커다란 괴리감을 느낀 까닭이다. 노조 바깥의 밑바닥 삶에 무심하고 제 것 챙기기에만 급급한 이른바 민주노조에 대한 반발이다.

노동운동을 포함한 민중운동은 작금의 논리체계와 사업방식을 규정지은 80년대 동굴에 갇혔다. 빛을 따라 나오다가도 이내 동굴로 숨어든다. 그래선 운동의 실효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동굴에 익숙해서다. 지독한 관성이다. 새로움이 생소하고 두려워서다. 개량주의라 비판 받을까 주저하는 내부정치 때문이다. 과거 노선이 종교의 경지로 굳어져서다. 80년대 논리체계는 100여년 전 러시아와 50여년 전 북조선의 상황에 근거했다. 80년대 사업방식은 독재시대에 주력 노동자가 최하층일 때 방식이었다. 경천동지할 만큼 시대상황과 노동자 처지는 재구성됐다. 그러나 전략·전술은 예전대로고 낡았다. 과거와 현재에 안주하는 건 보수다. 진보를 자처하는 민중운동이 보수화의 모순에 빠졌다.

운동이 봐야 할 달은 이미 서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달이 휘황찬란하게 뜨던 시간대의 하늘에 연연하는 우리는 여전히 동쪽을 가리킨다. 심지어 달의 이동경로와 전혀 무관한 북쪽으로 기운다. 그러면서 운동은 사그라지고 노조와 단체와 권력만 남는다. 기치가 사라지는 자리에 욕망이 나부낀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포함한 80년대 세대 운동가들의 공동책임이다. 누가 잘했고 못했다는 차원이 아니다. 함께 성찰하고 손가락 방향을 서쪽하늘로 돌려야 한다. 거기에 한국 사회의 암담한 현실이 있고, 노동자·민중의 실제 삶이 있고, 대중의 이해와 요구가 있다.

우리의 손가락이 멈춘 동쪽하늘엔 달이 없다. 찬란했던 과거의 미련에서 헤어나지 못한 우리의 눈에만 남은 환영일 뿐이다.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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