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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로 지은 농성장은 여기저기 낡았지만, 증축을 거듭해 나날이 튼튼했다. 그럴듯한 여닫이문도 붙었다. 온갖 사연 새긴 조끼와 선전물이 치렁치렁 걸렸다. 거기 머리숱 적은 사람이 살았다. 192일째라고 팻말 걸었다. 강성노조 때문에 건실한 회사가 문을 닫는다고 언젠가 집권당 대표가 말했고, 노동개혁 깃발이 곧 여기저기 무성했다. 발끈했다. 농성을 시작했다. 여의도 골목길 익숙한 풍경으로 스몄다. 안테나 높이 세운 방송 중계차가 어느 날 농성장 앞에 빼곡했다. 카메라 든 기자가 여럿 잰걸음으로 찾아왔다. 선거날이었다. 그도 한 표를 가졌으니, 부평 어딘가 문 닫힌 공장 인근 투표소에 일찌감치 다녀왔다. 농성장 주인은 언제나처럼 기타 품고 앉았다. 노래 잠시 멈추고 차기 국회 걱정을 쏟아 냈다. 대개 암울한 전망이었으니, 새 다짐을 보태는 그 목소리가 자주 높았다. 오후 6시, 그 앞 현수막 덮인 빌딩 창에 플래시 불빛이 요란스레 터졌고, 탄식이 쏟아졌다. 곧 빨간 점퍼 입은 청년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한 무리 노인들이 뒤따라 썰물처럼 빠져나왔다. 다 이긴 선거를 망쳤다며 불만을 쏟아 냈다. 여당 대표는 그 자리에 오지 않았다. 과로 탓에 병원에 갔다고 뉴스가 전했다. 중얼중얼 주문 외듯 움막 속 남자가 노래를 이어 갔다. 철의 노동자였다. 길거리 싸움 10년, 늙은 노동자의 노래였다. 내내 문을 활짝 열어 뒀다. 기울어 자꾸만 절로 닫히는 까닭에 의자를 받쳐 놨다.

정기훈  photo@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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