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발생한 ‘사표’는 무려 1천만 표에 달했다. 지역구 투표에서 1등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를 지지한 표다. 당시 총투표자수(2천180만6천798표) 대비 절반이 사표였다. 승자독식 구도가 낳은 폐해였다.

이런 구도라면 결과는 뻔하다. 조직과 돈이 있는 다수당 후보에겐 유리하고 소수당 후보에겐 불리하다. 1등만 살아남으니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부정·부패로 선거는 혼탁해진다. 낙선자를 지지한 이들은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다. 소선구제를 기반으로 한 지역구 투표의 한계다.

정당투표를 통한 비례대표 선출은 소선구제의 폐해를 줄이고자 도입됐다. 유권자가 정당명부에 투표한 비율에 따라 각 당이 의석수를 나눠 갖는 제도다. 지역구·정당명부에 한 표씩 행사할 수 있는 1인2표제다. 지난 2002년에 선거제도가 개정돼 2004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첫 도입됐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총 투표자 대비 13%의 비례대표 정당투표 지지율을 얻었다. 비례대표 8석에 이어 지역구 2석을 더해 10명의 국회의원이 당선됐다. 민주노동당은 당시 열린우리당·한나라당에 이어 일약 3당으로 부상했다.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진보정당은 좋은 결과를 냈다. 통합진보당은 10.3%의 정당투표 지지율을 얻어 비례후보 6명을 당선시켰다.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도 성사돼 지역구 투표에서도 7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2004년에 이어 2012년에도 진보정당은 13석으로 3당 지위를 유지했다.

이처럼 비례대표 정당투표는 소수당에게 국회 입성의 기회를 부여했다. 진보정당이 사상 처음으로 원내에 진입하는 성과를 냈다. 소선거구제를 바탕으로 한 지역구 투표의 문제점도 어느 정도 개선됐다. 비례대표를 늘리는 방식으로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까닭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20대 국회의원 총 의석수는 300석이다. 이 가운데 지역구 대표는 253석, 비례대표는 47석이다. 19대에 비해 20대 총선 비례대표는 7석이나 줄어들었다. 소수당 또는 진보정당에겐 국회 문턱이 높아진 것이다. 게다가 여당에 비해 야당은 분열됐다. 진보정당도 균열된 상태다. 이런 구도에선 여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비록 비례대표 의석은 줄었고, 여당에게 유리한 구도지만 정당투표의 중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소수당이 기댈 수 있는 것은 비례대표 정당투표다. 거대 여야 양당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변화를 바라는 이들이 선호하는 수단도 비례대표 정당투표다. 노동을 존중하는 국회가 되기를 바라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간 노동계는 친 노동자 후보와 정당에게 표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선거활동을 벌였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이 원내 3당이 된 비결이다. 적어도 민주노총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대해 같은 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20대 총선에선 이런 방식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양대 노총은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결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양대 노총 모두 친 노동자 후보를 선별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지만 정당투표만은 다르다. 종전과 다르기에 조합원 입장에선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젠 상급단체 지침에 따라 정당투표를 했던 것과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할 때다. 조합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정당 투표를 해야 한다. 조합원은 투표하는 기계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역구에 상급단체가 추천한 친노동자 후보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다. 좋은 후보를 가려 뽑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배포한 지역구 후보와 각 정당의 정책공약 자료집은 그 준거다.

이를 위해 양대 노총과 상급단체들은 조합원들이 지역구·비례대표 정당투표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변별력 있는 정보를 꾸준히 제공해야 한다. 반 노동자정당만 빼고 정당투표를 하라든지, 나열한 진보정당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상급단체 지침은 조합원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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