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4월5일은 기아자동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300일이었다. 제조업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은 이미 나와 있다. 11년간의 긴 투쟁 끝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도 6천명의 정규직 신규채용에 합의했다.

그런데 기아차 사측은 아직도 전향적인 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금 두 명의 노동자는 예전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 광고탑 위에서 여름·가을·겨울을 지나 봄을 맞았다.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은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고공에 올랐다. 85호 크레인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되돌리기 위해 304일을 버틴 김진숙 지도위원, 공장폐쇄에 맞서 408일을 굴뚝에서 보낸 스타케미칼 차광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고압선 철탑과 공장 굴뚝에서 현장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했다. 노조탄압에 맞서 풀무원 노동자들은 68일을, 부산 생탁과 택시 노동자들은 253일을 고공에서 보냈다. 현대차 비정규직은 정규직화를 위해,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노조탄압을 막기 위해 고공을 지켰다. 씨앤앰·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비정규 노동자들도 고공농성에 합류했다. 사람이 버티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

하늘에서 그렇게 버티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동료들이 용역과 경찰에게 쫓기고 모욕받는 것을 위에서 지켜보면서, 그저 버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고공농성자들에게 하루하루 날이 지나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올려 주던 밥이 차단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도 찾지 않는 긴 날을 그저 동료들을 의지하며 버텨야 하는, 그날들을 고공농성자들은 어찌 흘려보내는 것일까. 노사관계의 합리적 룰은 사라진 지 오래고, 고공에라도 오르지 않으면 사회적 힘도 모이지 않는 조건에서 이 나라 노동자들은 그 고통을 스스로 선택해야만 한다.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300일 동안 그렇게 서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잊는다. 아니, 자주 잊었다. 언제부터인가 ‘하늘’이 일상이 되고 그 요구에 공감했던 우리의 마음도 무뎌졌다. 갑자기 또 무슨 사건이 터져야 우리는 다시 그곳 하늘을 바라보고 그 앞으로 발길을 돌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는 말자. 지금은 비록 잊힌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 싸움을 기억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해 주자.

그런데 이렇게 마음만 전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많은 곳에서 고통스러운 목소리들을 마주한다. 서울시청 앞에는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의 영정을 모신 천막이 있다. 미대사관 뒤편에는 동양시멘트 비정규 노동자들이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명동 티브로드 해고자들의 농성장, 신림동 한남운수 해고자의 농성장도 있다. 광화문 지하의 부양의무제 폐지와 장애인등급제 폐지 농성장,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세월호광장, 소녀상을 지키고 한일협정을 무효화하기 위한 일본대사관 앞 농성장, 국가폭력에 쓰러지신 백남기 어르신 쾌유를 기원하는 서울대병원 앞 농성장도 있다. 모두가 지켜야만 하는 곳이다. 이 모든 곳에 발길을 돌릴 수 없는 우리는, 그저 마음만 보태면 되는 것일까.

사회의 합리성이 사라진 지금, 더 많은 억울한 이들이 생겨날 것이다. 노조탄압이 극심하고 노조 힘이 약하니 고공농성과 단식 등 자신의 몸을 던지는 투쟁도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이 하나하나의 싸움 모두가 버겁다. 기업과 정부의 힘은 강하고 법과 제도는 노동자와 민중의 편이 아니다.

싸움을 중단할 수도 없다. 그러니 싸움은 길어진다. 선거의 계절, 여러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노동자 권리를 이야기하고 비정규직 보호를 이야기하지만 투표를 잘한다고 해서 이 싸움이 끝날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그러니 이제는 노동운동과 민중운동 모두, 이렇게 외치는 이들을 그들 개별의 문제로 두지 말고 힘을 모으자. ‘문제 해결’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이 싸움이 ‘잠자고 침묵하는 이들을 깨우는 깃발’이라는 관점을 갖자. 이 싸움을 널리 알리고, 모든 싸움을 하나의 힘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보자. 이 투쟁을 서로 연결하고, 더 많은 이들이 마음을 모으는 계기로 삼아 함께 싸울 길을 모색하자. 이런 대중행동이 만들어져야 선거도 차악을 선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힘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많은 투쟁의 한가운데 서 있는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을 기억해야 할 이유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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