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지난주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 한 건을 받았다. 그러나 그리 기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민주노총 소속 단위노조를 상대로 한 사건이고 더욱이 대리인은 민주노총 법률원(담당 권두섭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교섭단위 분리가 쟁점이었는데 분리를 주장하는 우리측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물론 상대는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권두섭 변호사와는 책도 함께 쓸 만큼 선배로서 그를 많이 따르고 있다. 이른바 양대지침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도 함께 할 예정이다. 노동법에 대한 넓고 깊은 지식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민주노총 법률원을 지켜 온 능력은 필자도 배우고 싶다. 최근 수년간 그런 그와 법정에서 맞서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곤혹스럽기 그지 없다. 서로 힘을 모아도 부족할 판에 상대방이라니.

이런 상황은 앞으로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현행 노조법이 노노 간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교섭대표노동조합 확정에서부터 교섭단위 분리와 공정대표의무 위반까지 모두가 노동조합 간의 분쟁 사건들이다. 최근 수년간 노동문제는 자율이 아니라 법률 문제로 변질되고 말았다.

노동문제의 사법화 내지 시장화라고까지 말하지 않는가. 변호사수가 많아진 영향도 있겠지만 어찌 됐든 노동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는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런데 무조건 환영할 상황은 아니다. 노동자를 위한 공정한 조정자 역할을 자임하는 게 아니라 갈등을 조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나름의 깊은 고민과 분석 끝에는 국회가 있었다. 국회에서 노동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노동자를 갈라놓는 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노동자가 노동자를 상대로 소송하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중요하지 않는 헌법기관이 없겠지만 누가 뭐래도 그중 제일은 입법부이지 않은가. 이제 꼭 1주일 남았다. 다음 주면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말로 많고 탈도 많은 선거다. 뚜렷한 쟁점이 없는 탓인지 전체적인 감상은 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무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아니면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을 키우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도 있다. 무관심은 기득권 보장과 밀접하다는 게 일반적인 이론이지 않는가. 선거를 앞둔 이 즈음에서 꼭 등장하던 “공민권 행사” 뉴스가 사라진 것도 이상하다. “노동자들에게 선거권을 보장하라”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조차 찾기 어렵다. 혹 이번 선거일에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노동자들이 유급으로 선거를 하기 때문일까.

4년 전 19대 국회의원 선거 1주일 전을 돌아보면 야당이 과반을 넘길 것이라는 뉴스가 많았던 것 같다. 평범한 시민들과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공언한 이들의 선전이 눈에 보였다. 노동계로서는 어쩌면 2010년 개정된 타임오프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도 바꿀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최저임금을 확실하게 올릴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4년 동안 제대로 된 노동법 개정은 없었다. “무능”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4년 내내 수년을 끌어온 통상임금 문제 하나도 정리하지 못했다. 다수를 앞세운 여당은 노사정 합의조차 무시하면서까지 전횡을 일삼았다. 파견법과 기간제법 파동이 그것이다.

4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들의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고들 한다. 정리해고에 이어 저성과자 해고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최저임금은 최고임금이 됐다. 사회적대화기구는 유명무실해졌다. 제대로 된 법률보다 지침과 매뉴얼이 익숙해진 지 오래다.

원인은 분명해졌다.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답은 더 분명하다. 시민과 노동자를 위한 입법을 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4월13일 선거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최선을 다해 뽑아야 한다.

노동자들과 시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공약하는 후보자들에게 감히 제안한다. 생각이 같다면 한 명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어차피 둘이 함께 갈 수 없지 않는가. 서로 갈라서면 노동자들을 위한 국회는 또 다시 멀어진다. 또 다시 4년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