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달 30일 산업은행 등 7개의 금융공기업이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한다는 소식을 나는 뉴스로 읽었다. 2월19일에는 금속노조 발레오전장지회가 기업별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할 수 있다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됐던 터라, 이 나라 산별노조들은 이러한 소식의 뉴스를 심각하게 읽었을 것이다. 산별노조의 조직 운영을 약화시킬 수 있는 법원의 판결에, 산별교섭을 파탄 낼 수 있는 사용자 자본의 행태에 분노를 했을 것이다. 사법부 등 권력과 사용자 자본이 산별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분노든 비난이든 그것이 이 나라 노조운동의 조직적 지향인 산별노조를 굳건히 세우고 지켜 내기 위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상황이 나쁘더라도 객관적으로 파악해서 대응할 일이다. 이런 날, 산별교섭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3월30일에 고려대 노동대학원·노동문제연구소가 주최하고, 양대 노총·산별노조 연석회의가 주관했다는 토론회에는 주요 산별노조 간부들이 참석해서 발제하고 토론했다. ‘산별교섭, 어디로 가나’라고 한 토론회 제목처럼 도대체 이 나라에서 산별교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토론회에서의 발언을 살펴보면서 알아보자. 다행히 3월31일자 <매일노동뉴스>는 토론회를 자세히 보도했으니 읽어 보자.

2. 먼저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은 "2016~2017년에 초기업교섭을 제도화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노동계가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서, "노조가 노동조건 개선과 산업정책개입·사회의제를 함께 실현하려면 기업별 노사관계를 넘어선 산별 노사관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뉴스는 보도했다. 노조가 조합원의 노동조건 개선을 넘어 ‘산업정책개입·사회의제’까지 실현하고자 하면, 기업별 교섭 등 기업별 노사관계로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산업정책개입·사회의제’을 위해서 산별교섭 등 산별 노사관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산업정책개입·사회의제’까지를 교섭을 통해 산별노조가 실현해 내기 위해서는 산별교섭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노조조직률이 10%에, 그중 10% 정도만 산별교섭에 참여하는 수준이라면, 거기다 주요 사업장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산별교섭이라고 해도 한 나라의 산업정책에 개입할 교섭을 하기는 어렵다. 교섭해서 합의에 이른다고 해도 나라의 산업정책으로 관철해 낼 수는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아무리 노조 등 노동계가 집중한다고 해도 초기업교섭의 제도화는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목표로 될 수는 없다. 그러니 오늘 우리 산별노조의 현실을 볼 때에는 “2016~2017년에 초기업교섭을 제도화한다는 것”이 “구체적인 목표”라고 보기 어렵다.

금속노조는 올해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공동투쟁을 통해 산별교섭 활성화를 모색한다는 방침이라며, 박정미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정부와 자본의 반산별노조 방침, 10% 수준의 낮은 산별중앙협약 적용률 같은 현실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주요 부품사들을 총괄하면서도 산별교섭에 나오지 않는 대공장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산업발전 미래전략위원회 구성과 재벌의 사회적 책임 강화, 통상임금 정상화 같은 요구를 공동교섭 목표로 내걸고 단계적인 산별교섭 강화를 이룰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뉴스는 보도했다. 금속노조는 2016년에는 공동교섭을 주된 교섭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공동교섭은 금속노조가 2001년 설립 직후부터 줄곧 추진해 온 산별교섭은 아니다. 금속노조의 누구라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자본의 반산별노조 방침, 10% 수준의 낮은 산별중앙협약 적용률 같은 현실적 한계”로 인해서 불가피하게 올해는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을 금속노조의 교섭 방침으로 정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공동교섭을 단계적인 산별교섭 강화로 연결 지어 설명했다. 현 시점에서는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을 통해 금속노조의 산별교섭 강화로 단계적으로 이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사실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도 현대차·기아차지부 등 참여 조직의 공동투쟁에 의해서 쟁취할 수 있는 것이고, 공동교섭에 따른 이해를 타산한 현대·기아차 자본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니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은 금속노조가 그동안의 산별교섭 쟁취투쟁 실패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금속노조가 아닌 현대·기아차그룹 노사의 교섭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현대차·기아차 등 지부교섭에 관해서 금속노조가 취해 왔던 행동이 그대로 공동교섭에서도 지속된다면 말이다. 오직 규약에서 정한 대로 교섭 및 체결 권한을 금속노조(위원장)가 실제로 행사하겠다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나라 산별노조의 교섭에서 진정한 문제는 산별교섭을 할 수가 없다는 데 있지 않다. 조합원들은 조직형태변경 총회의 결의를 통해 지부·지회 등 기업조직이 아니라 산별노조(위원장)가 교섭체결 권한을 갖는 것으로 규약을 승인했다. 그것을 실질적으로는 우리의 산별노조 교섭에서는 관철하고 있지 못하다. 규약에서 금속노조(위원장)가 모든 교섭 및 체결의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금속노조는 조합원의 권리가 결정되는 사업장 교섭을 실제로는 해당 지부·지회 등 기업조직에 위임해 왔다. 규약은 규약일 뿐이었다. 현실은 위임에 의해서 기업교섭을 통해 조합원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확보돼 왔다. 그런데도 오늘 산별교섭이니 공동교섭이니 하면서 진정으로 문제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날 이승철 민주노총 사무부총장은 "사용자단체에 산별교섭 의무를 부과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단체 범위를 확대하고, 단체협약 효력을 확장하는 식의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매일노동뉴스>는 보도했다. 경총·전경련, 그리고 무슨 산업협회 등 사용자들이 회원인 단체에 산별노조와 교섭할 사용자단체 지위를 부과하고, 산별노조가 체결하는 산별협약을 해당 산업의 전체 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노조법상 단체협약 효력 확장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용자들의 단체가 노조법상 사용자단체라고 법으로 정해도 그 단체의 가입과 탈퇴까지 강제할 수는 없다. 결국 사용자들의 필요에 의해서 사용자단체를 조직하지 않는 한 이러한 법제도 개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단체협약 효력 확장을 하는 법제도 개선도 산별교섭이 이뤄져서 산별협약이 체결돼야 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조합원들에게 적용되는 협약일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일 수밖에 없고, 이러한 전제가 성취되지 못하면 노조법에 규정해 봐야 소용이 없는 일이다.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이를 위해서는 산별교섭이 사용자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점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됐다. 산별교섭이 사용자에게 이익이 된다면 사용자를 상대로 노동자권리를 확보해야 하는 노조의 요구는 관철되기 어렵다. 이것은 이 나라에서 그동안 산별교섭을 통해서 체결한 산별협약을 읽어 보는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결코 사업장 협약보다 우월한 수준의 권리를 확보해 왔던 것이라고 볼 수 없었다. 선언적인 것이거나 최저수준의 것이 대부분이었다. 조합원들이 자신의 권리가 보장돼 있다며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산별교섭이 산별노조에게도 사용자에게도 이익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조합원의 권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설득’으로 확보되는 산별교섭에는 조합원은 관심이 없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산별교섭이 필요하다"며 "사용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포함한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전략, 저성장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산업·일자리전략을 산별노조가 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용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포함한 현실적"인 전략은 산별교섭을 위해 조합원의 권리를 약화시키는 것일 수 있다. 산별교섭이 유용하다는 것과 산별노조가 그러한 산별교섭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구분된다. 지금 이 나라에서 산별노조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사회양극화 해소”에 유용하다며 산별교섭을 하자고 사용자들에게 제안한다고 해서 산별교섭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합원의 노동자권리를 대폭 양보하는, "사용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포함한 현실적”인 제안을 제시하지 않는 한 산별교섭에 사용자들이 일제히 참여할 가능성이 없다.

3. 산별노조는 산별교섭구조 확립을 가장 중요한 사업목적으로 삼아 왔다. 금속노조·보건의료노조·금융노조 등에서 산별사용자단체를 구성하게 해서 산별노조와의 교섭 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지난 10여년을 달려왔다. 그런데도 대규모 사업장 사용자들이 참여를 거부함으로써 아직도 산별교섭 쟁취는 많은 산별노조의 주된 사업목적인 상태다. 그런데 산별교섭을 노조가 쟁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사용자와의 교섭 틀을 세우는 걸 가지고 그걸 노조가 무슨 권리로 쟁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교섭은 노조활동과 조합원의 권리를 두고서 사용자와 하는 협상을 말한다. 노조가 하겠다고 해도 사용자가 하지 않겠다고 하는 순간, 그 결합구조는 파탄 나고 마는 것이다. 사용자들이 사용자단체를 조직해서 교섭을 해 왔다고 해도 사용자가 사용자단체에서 탈퇴하면 이미 체결된 협약을 이행토록 할 수는 있어도 사용자단체를 통한 교섭을 법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 산별교섭 쟁취란 사용자가 맘만 먹으면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노동조합이 조직력과 투쟁력으로 압도적인 교섭력을 가지고 있어서 사용자가 개별적으로는 노조를 상대로 교섭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지경이어야 사용자들은 자신의 필요에서 이러한 노조에 대적할 사용자단체를 조직해서 산별교섭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산별교섭은 노조가 투쟁으로 이걸 쟁취하겠다고 해서 쟁취될 것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교섭의 상대방에게 더 강한 조직으로 만들어서 나오라고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산별교섭이라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조가 개별 사용자를 압도할 교섭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산별노조는 사용자들에 선의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산별교섭에서 조합원의 권리 쟁취는 어렵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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