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으로 고용불안과 사회양극화가 심화하면서 그 해법으로 산별교섭이 조명을 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행정부와 사법부·자본이 힘을 합쳐 산별교섭 무력화에 나섰다는 위기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발레오만도지회의 금속노조 탈퇴를 합법이라고 판결하고, 금융공기업이 금융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그 신호로 본다. 노동계에서는 우려와 자성 목소리가 섞여 나온다. 무늬만 산별 논란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다. 산별교섭 어떻게 정상화할 수 있을까.


모범적 금융산별 노사관계에 정부 불법개입
 

▲ 허정용 금융노조 부위원장

금융노조는 2000년부터 산별집단교섭을 진행해 왔다. 2008년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가 창립된 이후부터는 산별중앙교섭과 지부별 보충교섭이라는 투 트랙으로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30일 7개 금융공기업들이 사용자협의회에서 탈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산별중앙교섭을 통해서는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가능성이 없으니 개별협상을 통해 뚫어 보겠다는 속셈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최근 몇 년간 수많은 사업장에서 시도된 산별노조 파괴행위의 일환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실제 정부(금융위원회)가 금융공기업들에게 사용자협의회 탈퇴를 압박한 정황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들려오고 있다. 수십년간 모범적이고 안정적인 산별 노사관계를 구축해 온 금융산업에까지 반헌법적인 노조파괴 공작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금융노조는 사용자협의회와 7개 금융공기업 기관장 앞으로 사용자협의회 탈퇴선언 취소와 성실교섭을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산별노조 파괴 음모를 일삼으며 자율적 노사관계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정부를 상대로 법률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노조의 올해 핵심사업은 바로 산별강화다. 산별강화TF를 꾸리고 산별강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정부의 산별파괴 공작을 뛰어넘어 산별노조로의 집중성을 높이고 전체 조합원들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노동시장 양극화 유일 해법은 산별교섭
 

▲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

한국 사회 위기와 노동운동의 위기, 노동시장 양극화, 고용 없는 성장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기업별 노사관계를 초기업 노사관계로 재편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민은 오히려 노조 자체에 관심이 떨어지고 있다. 국민과 노동자에게 산별교섭 의미를 이해시키고 알리는 작업이 안 된 상태에서 산별교섭 법제화나 산별노조 탄압을 항의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물론 해야겠지만.

사용자들의 과도한 오해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산별교섭을 하면 노조가 힘이 세지고 사측에 위협이 된다는 오해를 불식하고 노조를 산업민주주의나 경제민주화 파트너로 보도록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대로 가면 지금의 노동운동이 유지·관리는 되겠지만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역할을 하기는 어려워진다. 기업별 노사관계를 재편하지 않고는 어떤 투쟁도 산발적이고 일회성이 되기 십상이다.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다.

2016~2017년 주요 선거국면에서 양대 노총이 산별교섭을 주제로 단일한 연대전선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대선을 대비해 양대 노총이 10대 요구니, 20대 요구니 백화점식으로 요구안만 나열할 게 아니라 산별교섭을 알리고 제도화하는 ‘원포인트 연대’를 할 것을 제안한다.


정부의 반산별정책 배후는 재벌이다
 

▲ 박정미 금속노조 정책실장

금융위원회의 압박으로 7개 금융공기업 사용자들이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한 사건을 보면, 정부의 산별노조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다. 개별교섭은 되도 산별교섭은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줄곧 기업별노조와 차별성이 생기기 때문에 산별노조에 특혜를 줄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정부가 산별노조를 부당하게 탄압하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양상이다. 정부는 특히 대기업 노조들을 겨냥하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단체협약 전수조사의 공격 대상도 대기업 노조였다.

이런 상황에 비춰 볼 때 정부의 노사관계 개입 배후는 재벌일 가능성이 매우 놓다. 재벌들은 박근혜 정권의 반노동정책의 배후이기도 하고, 그 자체이기도 하다. 재벌들은 3세 경영승계를 위해 계열사를 합병·매각·빅딜하면서 희망퇴직과 구조조정을 남발하고 있다. 열심히 일해 온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고용불안에 내몰리는 상황이다. 재벌들은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통해 중소영세 하청업체와 노동자들의 고혈을 빨고 있다. 이는 다시 재벌 총수일가의 재산으로 축적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재벌들의 ‘갑질’에 눈을 감은 채 엉뚱하게도 노조를 상대로 ‘고용세습’이라는 억지주장을 펴고 있다.

한국에서 산별노조가 안착하려면 재벌과 그 재벌에 부역해 정치권력을 누려 온 친재벌정부 즉 재벌공화국을 전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금속노조가 올해 산별노조 강화를 위해 현대·기아차 재벌을 상대로 공동요구·공동투쟁·공동교섭을 요구하는 근본적 이유다.

산별노조 강화 통한 교섭구조 확보해야
 

▲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산별교섭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산별노조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동안 산별노조는 기업별노조와의 차별성을 형식적 산별교섭에서 찾아 왔다. 형식적 산별교섭이 실제 조합원 권리 확보를 위해 유의미한 역할을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산별노조의 의미가 뭔가. 단위 노조들이 하나의 산별노조로 뭉쳐 힘을 강화하고 약한 노동자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그런 산별노조가 두렵지 않겠나. 교섭구조는 산별노조가 그런 실질적인 힘을 갖추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형식적 산별교섭 자체에 대한 집착은 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별노조 강화가 우선이다. 산별노조 스스로 교섭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와 함께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의 금속노조 탈퇴를 인정했다. 산별노조를 위협하는 판결이다. 산별노조의 조직형태 변경을 인정하지 않거나 조직이탈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 역시 산별노조를 위협한다. 산별노조가 과반수가 안 된다고 교섭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산별노조가 과반수가 되지 않아도 교섭권을 보장받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산별교섭 핵심은 연대임금, 지금은 그런 감동이 없다
 

▲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지금은 10여년 산별교섭의 역사를 돌아보고 내용을 채워야 할 때다. 핵심은 임금연대다. 대법원 판결 때문에 연대를 못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실질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콘텐츠를 채우는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 금속노조가 한다는 현대차그룹사 공동교섭은 콘텐츠 면에서 매우 부족해 보인다. 그들만의 리그가 될 가능성도 있다.

공동교섭을 한다면 현대차그룹 재벌문제를 놓고 ‘이슈파이팅’ 해야 하는데, 요구안을 보면 총수한테 돈 좀 더 내라고 요구하는 정도다. 기업의 경계를 넘어서자는 형식적인 틀 갖추기를 넘지 못하고 있다. 산별교섭의 핵심은 기업 경계를 넘어선 연대활동이다. 연대임금을 중심으로 정책이 제출돼야 하고, 고용을 어떻게 지킬지 프로그램이 나와야 한다. 사용자들이 혹할 만한 제안을 하고 금속노조가 이번에는 뭔가 하려는가 보다 하는 말이 나올 정도가 돼야 한다. 이를테면 원·하청 연대임금도 아니고 임금 높은 사업장끼리 연대하겠다는 것인데 그래서 무엇을 하겠나. 상상력의 빈곤이다. 감동이 없는 영화 같아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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