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지난 25일 중앙노동위원회가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원청 아사히초자화인테크노한국(이하 아사히글라스)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서 원청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는 판정을 내렸다고 한다.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지난해 5월29일 노동조합을 결성하자 원청은 6월30일자로 9년간 계약을 반복한 사내하청업체에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사내하청업체는 같은해 7월3일 폐업과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노조를 결성한 지 한 달여 만에 전광석화와 같이 원청 계약해지와 사내하청업체 폐업이 이뤄져 조합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원청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사용자 지위에 있지 않고, 사내하청업체 역시 폐업해 사라졌다는 이유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모두 각하했다. 아직 판정문이 송달되지 않았지만 관련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중앙노동위는 원청이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가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하고, 원청의 사내하청 계약해지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6년 전인 2010년 대법원은 2003년 8월24일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조(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가 창립총회를 한 직후인 2003년 9월부터 11월까지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조합원이 속한 사내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하고, 사내하청업체들은 곧바로 폐업한 사건에서 원청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가지므로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2010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고용주가 아니더라도 간접고용 노동자의 기본적 노동조건에 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는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법리가 확립됐다. 그렇다면 “노사관계에서 법과 원칙을 따르겠다”고 공언한 고용노동부는 실질적 지배력을 가지는 원청이 사내하청 노동자를 상대로 저지르는 부당노동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법 집행을 해야 한다.

그러나 170여명의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 복직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을 벌인 지 9개월이 되도록 노동부 구미지청은 원청의 부당노동행위를 내버려 두고 있다. 아사히글라스의 3개 사내하청업체 중 조합원이 속한 1개 사내하청업체만 계약해지 후 폐업을 했다. 조합원들이 하던 업무에는 원청 계열사 노동자들이 투입돼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처럼 원청이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조활동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다고 볼 정황이 충분함에도 노동부는 근로감독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아사히글라스 문제 해결을 위한 구미시 노사민정실무협의회 간담회 자리에서는 오히려 “노조 안 하면 안 되느냐, 돈 받고 나가면 안 되느냐”는 질문만 나왔다고 한다.

노동부의 '사용자 불법 봐주기'는 비단 아사히글라스 사례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부는 KNL물류의 소사장 밑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KNL물류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있다고 판단하고도, 원청이 소사장업체를 계약해지 후 폐업시켜 조합원들을 집단해고한 것에 대해서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에 적용할 행정지침이 없다”는 이유로 원청의 부당노동행위를 묵인했다.

이뿐인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에 대한 표적감사와 징계가 이어지고,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조합원을 상대로 노조 탈퇴 강요, 개인사업자 전환 강요 같은 부당노동행위가 자행되고 있는데도 노동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부당노동행위는 그 즉시 제지와 구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노조와 조합원에게 미친 파괴적 효과를 상쇄하기 어렵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 부당노동행위를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시간이 흘러가면 그 실제적 효과는 퇴색하게 된다.

지금 노동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노사자치와 노동기본권 보장 원칙에 맡겨 둬야 할 단체협약을 탈탈 터는 일이 아니라 무법천지로 자행되는 사용자 부당노동행위에 제동을 걸어 현장에서 ‘법과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