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비스 어떠셨나요?”

최근 롯데백화점 매장에 설치된 신용카드 결제용 PDA에는 이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손님은 ‘만족·우수·보통·미흡·불만’ 중 하나에 체크한 뒤 서명을 해야 결제가 완료된다. 물건을 판매하는 노동자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객 평가를 받는다. 결제시스템에 노동자 평가시스템을 결합한 이 기기는 조만간 신세계 백화점 매장에도 도입될 예정이다.

유통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이 같은 기기 진화는 재앙에 가깝다. 한마디로 고객과 사용자의 ‘이중 갑질’을 가능케 하는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이 일상화되면 서비스 노동자들은 진상고객이 난동을 부려도, 갑사인 백화점 관리자들이 부당한 업무지시를 해도 참아 넘겨야 한다.

<매일노동뉴스>와 서비스연맹이 지난 29일 백화점의 얼굴로 불리는 1층 화장품매장에서 고객을 상대로 고급브랜드 화장품을 판매하는 노동자들의 감정노동 실태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놀라운 사실은 땅콩회항 사건이나 라면상무 사건 이후 감정노동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들끓었던 것과 별개로 노동자들의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또는 이들 매장에 입점한 브랜드업체들은 상품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이중삼중의 매뉴얼을 구비하고 있으면서도, 고객들의 부당한 갑질에 맨몸으로 노출돼 있는 직원들을 보호하는 방안을 찾는 데에는 인색했다.

이은희 로레알코리아노조 위원장은 “신입직원들이 3년을 못 버티고 회사를 그만둔다”며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 일에 자신의 열정을 쏟고 싶지 않다고 한다”고 전했다. 기본적으로 노동시간이 긴 데다, 휴무일마저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고객과 사용자의 갑질까지 견뎌 내기가 쉽지 않다.

유통업체 특유의 업무형태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법적으로 매장에서 일하는 판매노동자와 고용-종속 관계가 아니다. 사용자로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아주 구체적으로 업무지시를 내린다. 롯데백화점이 도입한 결제시스템은 이러한 현실을 보여 주는 단면이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는 “국회에 제출된 감정노동 보호법안을 보면 의원들이 백화점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며 “감정노동자 보호법안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실제로 사용자성을 발휘하는 백화점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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