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진 매일노동뉴스 기획위원

뉴질랜드 의회(단원제)는 지난 10일 ‘제로시간 근로계약(zero-hour contract)’을 금지하는 법령을 이례적으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제로시간 근로계약은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을 고용함에 있어 주당 노동시간을 보장해 주지 않아도 되는 제도를 말한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뉴질랜드에서만 수십만 명이 이와 같은 노동계약으로 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많은 노동자들이 패스트푸드·커피체인점·영화관에서 일하는 최저임금 청년노동자들이다. 이러한 노동시장 관행이 올해 4월1일부터 금지된다. 청년노동자들이 주당 노동시간을 보장받고 1주일 24시간 호출대기 생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3월9일 프랑스에서는 ‘쉬운 해고’와 ‘불안정한 노동계약’을 초래하는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집회가 전국적으로 조직돼 수십만 명이 참여했다(최근 완화된 정부 수정안이 나왔다). 특히 노동자들과 함께 청년 학생들의 참여가 높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프랑스 청년실업률이 25%를 웃돌고 지난해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의 90%가 불안정한 고용이라는 현실에서 ‘쉬운 해고’까지 이뤄지면 안정적인 일자리와 인간다운 삶에 대한 자신들의 꿈은 이뤄질 수 없다는 절박함을 많은 청년 학생들이 집회에 참가하게 된 주된 이유로 분석한다.

청년실업률이 전체 노동자들의 일반 실업률보다 두세 배 이상 높은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스페인과 그리스의 청년실업률이 40~50%나 된다는 보고도 있다. 높은 청년실업률은 지구적 현상이지만 정부가 주로 접근하는 방법은 노동시장 유연화(labor market flexibility)를 통한 것이다. 일자리 질과 고용안정은 따지지 않고 노동비용이 적게 드는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어서 정량적으로 청년실업률을 낮추는 효과는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이다. 독일 청년실업률은 올해 1월 현재 7.1%다.

점점 더 늘어나게 될 주변부 비핵심노동자, 즉 소위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이라는 뜻의 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를 의미하는 proletariat의 합성어)들의 불안정한 고용과 빈곤에 대한 근본대책으로 일정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basic income)제도가 최근 주목받고 있다.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핀란드가 눈에 띈다. 핀란드는 2017년 성인 국민 1인당 매월 800유로(실업급여 등 현재의 모든 사회보장제도를 정리하는 것과 연계되기 때문에 확정된 금액은 아님)를 약 10만명에게 지불하는 기본소득제도를 시험 실시한다고 한다. 비과세이고 수급자격에 어떠한 조건이 붙지 않는, 개인이 처분할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이기 때문에 청년들은 줄어드는 일자리와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큰 걱정 없이(빈곤의 덫-실업급여 혜택을 위해 구직포기 또는 강요된 일시적인 회전문 취업)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과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위트레흐트(Utrecht)시에서도 금년 1월부터 기본소득제도를 핀란드보다 먼저 시험 도입하기 시작했다. 위트레흐트시는 시의회 의원들이 기본소득을 '공짜 돈'으로 인식하자 문서상 기본소득 용어를 모두 시민임금(citizen's wage)으로 바꿔 제출하는 촌극까지 벌인 끝에 시의회를 통과했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캐나다의 정치·경제의 중심이면서 인구가 가장 많은 온타리오주에서도 2016년 기본소득 시범프로젝트(pilot project)를 실시하기 위한 예산을 책정해 빈곤퇴치와 가구의 기본소득 보장을 주정부 차원에서 시험 실시하게 됐다. 캐나다는 미국과 달리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을 실시하고 있는데, 국민의료보험도 서스캐처원(Saskatchewan)이라는 인구가 아주 적고 내륙의 대평원 오지인 주에서 1946년 시작되면서 전국적으로 점차 확대돼 오늘날과 같이 정착된 사례가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제도 또한 앞으로 발전하고 다른 주로 파급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다른 사례는 통과 여부를 지켜봐야겠지만 올해 6월5일 기본소득제도 실시에 대한 국민투표가 예정돼 있는 스위스다. 기본소득(성인은 1인당 월 2천500스위스프랑, 어린이는 1인당 월 625스위스프랑) 도입에 대한 국민투표를 하는 첫 번째 국가로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찬성이 많기는 하지만 지난해 상원과 하원이 모두 반대(중도·보수는 국민이 나태해진다는 이유로, 진보는 현 복지제도를 손상할 수 있다는 이유로)한 적이 있어 실행되기까지 비관적인 여론이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35세 이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다수가 '기본소득제도가 언젠가는 실시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무 좋아서 비현실적(too good to be true)'이라는 논리로 회피되던 기본소득 보장(basic income guarantee)제도가 심화되고 있는 고용불안·불평등 그리고 복지 사각지대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론은 간단하지만 실행에 주저하고 있는 국가들에게 이러한 기본소득제도 시험 실시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날 경우 그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전망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