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손학규 후보 진영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당시 이 공약은 장시간 노동 관행을 타결할 묘수로 인식됐고 그 울림도 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일하는 국가, 그런데도 노동자 삶은 팍팍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제대로 표현한 수사로 충분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이 공약은 왠지 반쪽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저녁이 있는 삶만 이야기하는가.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왜곡된 노동시간을 에둘러 표현했지만,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경직돼 있다는 느낌이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보통 근무형태를 전제로 한 것 같다. 아침에 출근하는 노동자의 삶은 어떤가. 보통 출근시간은 아침 8시에서 9시 사이가 대부분이다. 내가 아는 한 공장도 시업시간이 아침 8시다. 직원들은 시업시간보다 30분 전에 회사에 도착하는 것이 보통이다. 통근버스는 오전 6시 반에 출발한다. 통근버스를 타려면 집에서 6시에 나서야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5시40분에는 일어나야 통근버스로 출근할 수 있다. 아침은 주로 회사에서 먹는다. 조금이라도 아침잠을 더 자고 싶으면 자가용으로 출근해야 한다. 그러면 1시간 정도는 더 잘 수 있다. 대신 기름값으로 적게 잡아도 한 달에 30만원은 지출해야 한다.

이렇게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삶은 여유가 없다. 특히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거나 맞벌이하는 가정이라면 아침은 거의 전쟁터 수준이다. 저녁에 일찍 퇴근한다고 해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는 이것마저 쉽지 않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저녁 10시다. 공부에 지친 아이를 붙잡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눈치 보인다.

아침이 있는 삶이 가능한 근무형태를 실현한 회사가 있다. 현대자동차다. 현대차는 올해 1월부터 잔업시간이 없는 교대근무 형태로 전환했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자면 완전한 8시간 근무형태는 아니다. 오전조는 5분을 더 일하고, 오후조는 20분을 더 일하는 방식이다. 오전조는 아침 6시45분에 시업하고 오후 3시30분에 퇴근한다. 오후조는 3시30분에 시작해 다음날 새벽 12시30분에 퇴근한다. 옛날에 오후조가 아침 7시 반에 퇴근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혁명적인 변화다.

현대차에서 교대근무로 일하는 노동자와 이야기했더니 아침과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역시 노동자 삶에 가장 변화를 준 것은 오후조 퇴근시간이었다. 현대차는 오후조가 7시30분에 퇴근하던 방식을 2013년 1시30분으로 당겼고 이번에 다시 12시 반으로 1시간 더 당겼다. 이제 노동자가 집에 가면 새벽 1시 정도다. 보통 새벽 2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 수 있게 됐다. 아침에 7시에 일어나 아침시간을 가족들과 보낼 수 있게 됐다. 아침에 아이와 같이 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아이와 아빠 둘 다 바빠서 대화할 여유조차 없었던 아침시간이 이제는 아빠가 여유가 있으니 대화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자기계발 기회도 많아졌다. 아침에 운동도 가능하고, 문화센터에서 하는 수업도 들을 수 있게 됐다. 악기를 배울 수 있고 학원 수업도 가능해졌다. 의지만 있으면 시민단체 반상근 활동도 가능하다. 시간을 주체적으로 배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차의 노동시간단축 방식을 놓고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다.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줄였다는 점은 아픈 대목이다. 그렇지만 현대차가 보여 준 근무형태는 노동시간이 줄었을 때 노동자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사례임이 틀림없다. 아침이 있는 삶이 저녁이 있는 삶보다 만족도가 높다는 점은 근무형태를 고정된 형태로만 접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 준다.

이번 국회의원 총선에서 각 정당이 제시하는 공약을 보면 하나같이 노동시간단축이 들어 있다. 그중에 칼퇴근이라는 공약이 눈에 띈다. 여기서 말하는 칼퇴근은 8시간 노동시간제를 지키자는 의미로 읽힌다. 8시간 노동제를 유연하게 접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침이 있는 삶이든 저녁이 있는 삶이든 적어도 하루 중에 하나는 가능한 노동생활을 정치가 실현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imks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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